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한국인 최초의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선우예권(28·사진)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을 연주하는 도중 객석 2층 한구석에서 난데없이 ‘철커덕’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연장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였다. 선우예권이 장장 30분에 달하는 이 곡을 연주하는 동안 이런 소리는 두어 차례나 더 났다. 소리가 날 때마다 관객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미션(공연 중간의 휴식시간)이 아닌 공연 도중에는 관객의 입장과 퇴장이 철저히 통제되는 것이 보통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알고 보니 ‘문소리의 주범’은 다름 아닌 방송사의 카메라 담당 기자들이었다. 카메라 기자들이 연주 장면을 잠시 촬영한 뒤 공연장을 빠져나가면서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수차례 났던 것이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일반 관객들은 공연 도중 입장과 퇴장이 당연히 불가능하다”면서도 “방송 촬영은 특수한 경우라 불가피하게 퇴장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S측 관계자는 “본 방송사의 카메라 스태프들은 공연 내내 자리를 지켰다”라며 “본 방송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연주에 직접적인 방해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이따금 울린 휴대전화 소리도 관람객의 흥을 깨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객석 매너에 대한 일부 아쉬움을 제외하면 사실 이날 선우예권의 연주는 만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특히 앙코르 무대를 통해 보여준 화끈한 쇼맨십과 팬 서비스는 왜 그가 클래식의 ‘슈퍼스타’로 불리는지 짐작하게 했다.
선우예권이 팸플릿을 통해 미리 예고한 4곡의 연주를 모두 마치자 일부 관객들은 서둘러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공연 후 사인회가 예정된 만큼 앙코르 1~2곡을 감상하지 않더라도 맨 앞줄에 서서 대기하기 위해서였다. 선우예권이 관객의 환호 속에 2개의 앙코르곡 연주를 마치자 객석의 절반 가량은 이미 공연장을 빠져나가 사인회장으로 이동했다. 객석에 남은 관객들에게 선물이라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선우예권은 일반적인 관례는 알 바 아니라는 듯 무려 3곡을 더 연주한 뒤에야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가 앙코르를 위해 피아노 의자에 다시 앉을 때마다 그 모습을 TV 모니터로 확인한 사인회장에서는 ‘아~’ 하는 탄식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이날 정규 공연은 약 68분(인터미션 제외)이었는데 선우예권이 5곡의 앙코르를 연주한 시간은 30분을 훌쩍 넘었다.
한편 선우예권은 이날 그레인저의 ‘장미의 기사’ 중 사랑의 듀엣,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등을 연주했다. 지난 6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들이다. 선우예권은 20일에도 예술의전당에서 한 차례 더 독주회를 가진 뒤 21일에는 서울 강남 논현동의 클럽인 옥타곤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MOC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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