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정당이 참여한 오스트리아의 새 연립정권이 출범 후 첫 정책으로 민족·역사적 동질성을 지닌 이탈리아 주민 일부에 시민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19일(현지시간) 첫 내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이탈리아의 최북단 자치주 트렌티노알토아디제(남티롤) 주민들에게 오스트리아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이 문제를 이탈리아 정부와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오스트리아 국민당과 극우 자유당이 지난주 말 연정 협상을 타결하며 내놓은 180쪽 분량의 연정 합의안에 이런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자유당에서 이 문제를 총괄해온 베르너 노이바우어 의원은 “이탈리아 남티롤 주민들은 이르면 내년, 늦어도 오는 2019년 초부터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남티롤 게르만계 주민들에게 시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서부 티롤주와 국경을 맞댄 남티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다가 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가 패전하면서 이탈리아에 귀속됐다. 주민 52만여명 중 70%가 독일어를 사용할 만큼 언어·지리·문화적으로 오스트리아에 더 가깝다.
오스트리아 새 정부의 이 같은 구상에 대해 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은 즉각 불쾌감을 드러냈다. 남티롤이 자치 수준이 높은데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이라 분리독립 투쟁이 점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베네데토 델라 베도바 이탈리아 외무차관은 “오스트리아의 새 정부가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며 “인종적·국가주의적 기반을 근거로 이중국적을 인정한다는 제안은 다문화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열린 유럽’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도 “유럽은 이미 국가주의 시대를 종결했다”며 “새 정부의 제안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사태 확산을 경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극우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이번 제안은 유럽 내 인종국가주의가 확산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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