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배우들이 한 해에만 두세 편에 출연해 관객과 만나곤 하지만 하정우(39·사진)만은 예외였다. 하정우의 작품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관객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연말 기대작 ‘신과 함께-죄와 벌’(20일 개봉)과 ‘1987’(27일 개봉)이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개봉하는 것. 이 때문에 올 겨울은 극장가는 ‘하정우 대 하정우’의 대결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례적인 상황에 놓인 그를 최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음이 어느 쪽으로도 쉽게 가지 않는다. 개봉을 앞두고 이렇게 이성적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판타지물 ‘신과 함께’는 가족애로 감동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1987’은 묵직한 울림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며 두 작품이 잇달아 개봉하는 소감을 밝히며 말문을 열었다.
우선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신과 함께’는 망자가 저승세계의 지옥 7곳을 차례로 거치면서 재판받는 과정을 그린 판타지로 그는 이 작품에서 저승 삼차사의 리더 강림 역을 맡아 극 전체를 이끌어 간다. 영화는 원작과 상당히 달라졌지만 메가폰을 잡은 김용화 감독의 주특기인 신파가 엔딩 10분에 포진해 눈물샘을 자극하며 감동을 선사한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하정우는 “‘신과 함께-죄와 벌’은 ‘국가대표’처럼 감정이 풍부해서 선택한 것”이라며 “누군가는 이를 신파라고 하는데, 신파는 김용화 감독이 가장 잘하는 장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작품을 선택할 때 감독이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는지, 경험치를 이야기하는지, (소재나 주제를) 좋아하는지를 보는데 이것이 밀착돼야 영화가 사랑받는데 ‘신과 함께’는 이 모든 것이 딱 맞아 떨어진다”며 “영화는 자홍(차태현)과 엄마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여정이 김용화 감독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신파다’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 영화에서 신파가 빠지면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자홍, 수홍(김동욱) 그리고 엄마의 관계에서 절절한 감정을 표현한 게 신파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1987’에서 그는 대공수사처에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이는 최 검사 역을 맡았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1987년 6월의 그 날처럼 영화는 인물 몇몇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출연자 전체의 이야기를 담은 까닭에 충무로 티켓 파워 1위를 자랑하는 그의 명성에 비해 분량은 적다. 이에 대해 그는 “아픈 역사를 꼭 알려야 할 의무가 있어서 선택한 작품”이라며 “물론 다루기 어렵고 조심스러운 주제지만 역사적 책임의식과 상업영화로서의 가치가 온전히 전달되는 구성의 시나리오인 까닭에 주저하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최 검사가 부검을 결정하는 계기는 대공에서 계속 압력을 넣으니 이에 대한 검사로서의 자존심과 반발심 그리고 정의감 사이의 감정이었던 것 같다”며 “그런데 실존 인물이다 보니 표현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1987’은 다큐멘터리와 같은 정공법으로 그려야 할 소재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상업영화의 형식으로 다뤘지만 연출의 진정성과 깊이로 올 한해 커다란 찬사를 받았던 ‘아이 캔 스피크’를 연상하게 한다. 이 때문에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6·10민주화 항쟁을 어떻게 상업영화로 ‘감히’ 그렸나 라는 의구심과 우려는 불식되기에 충분하다.
하정우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배우로서의 최고의 위치에 있고 남자 배우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배우 중 하나다. 심지어 배우 차태현은 ‘다시 태어난다면 하정우로 태어나고 싶다’고 할 정도다. 그는 ‘톱 배우’ 위치에 있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다. 특히 거절할 때 가장 힘이 든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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