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상동 부장판사)가 22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일부 경영비리 혐의의 유죄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유죄는 부친인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그릇된 지시를 막지 못한 데 대한 것이다. 반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회사 롯데피에스넷을 지원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배임이 아니라 합리적 경영활동으로 인정됐다. 이에 따라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됐다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재판부는 ‘신 회장이 경영권을 보장받기 위해 신 총괄회장을 적극 도왔다’는 검찰의 수사 프레임부터 깼다.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이 계열사를 동원,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부당 급여를 지급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신 총괄회장은 최상위에서 경영에 관여했고 신동빈·신동주는 돕는 위치에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했다”고 판단했다. 신동빈·동주 형제가 한국·일본에 걸쳐 있는 롯데그룹의 공동 성장을 도모하는 데 기여한 만큼 신 전 부회장의 급여는 ‘공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계열사 등기이사로서 신 전 부회장이 받은 급여를 ‘횡령’으로 봐 신 총괄회장 부자를 엮으려던 검찰의 시도는 무력화됐다.
신 회장의 471억원대 롯데피에스넷 관련 배임 혐의도 결국 무죄로 판결됐다. 신 회장이 부실기업인 롯데피에스넷을 위해 코리아세븐·롯데정보통신·롯데닷컴 등 계열사를 무리하게 유상증자에 참여시켜 430억원대 손실을 안겼다는 혐의다. 롯데알미늄을 롯데피에스넷의 거래 과정에 끼워넣어 39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기도록 한 혐의도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롯데는 유통·금융을 결합한 신사업을 위해 피에스넷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800억원대의 부채가 발생했고 증자 같은 자금조달 필요성이 있었다”며 “피고인들의 결정은 합리적 경영판단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롯데피에스넷이 무가치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무리한 수사로 기업 흔들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게다가 지난해 수사 과정에서 롯데그룹 2인자인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해 이미 비자금 의혹 등 수사의 핵심 연결고리마저 잃었다. 심지어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꼽혔던 제2롯데월드 인허가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은 제대로 구명조차 못 하면서 검찰 수사가 결국 ‘속 빈 강정’이었다는 쓴소리가 나온 바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미 신 회장을 재판에 넘기기 전 수사 단계에서부터 검찰이 연이어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수사에 실패해 한편에서는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돌았다”며 “그만큼 이미 재판에서의 참패를 예상한 이들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무죄 부분은 법리 등을 집중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롯데그룹으로서는 신 총괄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으면서 이미지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이 롯데시네마 직영 영화관 내 매점 사업을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씨가 소유한 회사에 임대해 롯데쇼핑 등 계열사에 778억원의 손실을 끼친 점은 유죄로 인정했다. 경영상 역할이 전혀 없는 서씨와 신씨를 계열사 이사로 올려놓고 117억원의 급여를 준 점에 대해서도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 모두 유죄가 인정됐다.
/이종혁·안현덕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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