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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삽삽스러웠던 내 딸…어찌 그리 가버렸니"

22일 충북 제천시 5곳 병원 빈소

유가족·친척·지인·주민들 모여

갑작스러운 이별에 통곡·오열·황망

"정부가 진상규명 확실히 해 달라"

22일 오전 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제천=송은석기자




동그랑땡·진미채·육개장.

딸과 자주 먹었던 반찬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말이 없다. 최용환(74)씨는 딸 최모(55)씨 사망소식을 22일 아침에야 접했다. 전날 저녁 제천 화재 소식을 들었지만 ‘설마 거기 갔을까’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차로 20분 거리에 살았던 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씨는 이날 이른 아침 자녀들이 난데없이 “아침 먹자”며 들이닥쳤을 때, 거기에 첫째 딸만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수십 통씩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을 때 당연한 존재가 사라졌음을 직감했다. “갔느냐?” 자녀들은 말이 없었다. “삽삽스럽고(사근사근하고) 활발했던” 첫째 딸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족들 곁을 떠났다.

또 다른 딸 장모(39)씨도 제천 참사로 아버지 곁을 갑작스레 떠났다. 아버지가 영정 앞에서 연신 눈물을 쏟는 동안 손에 쥔 손수건은 이미 다 젖어버렸다. 서른 넘어 늦게 얻은 딸이었다. 지난해 제천시로 이사 온 뒤로 장씨는 밤낮없이 일할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고생스럽지만 1년만 참자”며 딸 내외를 위로했다. 1년이 다 된 12월 말, “이제야 살림이 좀 안정되는 것 같다”며 행복해했던 딸은 참사 당일 사우나에서 나오지 못했다. 말없이 바닥을 응시하던 아들 한모(12)군은 “엄마 생각난다. 엄마가 해 준 밥과 고사리 나물이 먹고 싶다”며 고개를 떨궜다.

58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로 자녀·부모·아내를 잃은 유가족들은 참사가 하루 지난 22일에도 황망함과 상실감을 감추지 못했다. 충북 제천시내 장례식장 5곳 빈소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에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만 흘렸다. 주로 50·60대 여성 다수가 희생된 만큼 빈소는 장성한 성인 자녀들과 친인척들이 지켰고, 동네 지인과 학교 동창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어떤 이는 “이럴 수는 없다”며 바닥에 쓰러져 오열했고 어떤 이는 터지는 눈물을 막지 못해 외투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이번 화마로 친한 친구와 그 아내를 동시에 잃은 김호찬(59)씨도 게시판에 적힌 사망자 명단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참사 당일 오후 2시엔 김씨도 남성 목욕탕에 들러 쉬고 있었다. 원래는 사우나도 할 생각이었지만 자원봉사센터 연락을 받고 먼저 나서 변을 피했다. 2시간 뒤 화재소식을 접한 김씨는 친구 내외가 스포츠센터 안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풀썩 주저 앉았다. “연간 회원권 끊어 부부동반으로 오래 다니자”던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다.

김호찬(59)씨와 일행이 충북 제천시 두손스포리움 앞 광장 게시판에 적힌 사망자 명단을 읽어보고 있다./신다은 기자


빈소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슬픔 가운데서도 “화재 원인을 정부가 꼭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건물 외장재로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를 쓴 점, 2층 통유리 안에 이용객 20여명이 갇혀 있는데도 구조가 30분 넘게 지연된 점, 출입문이 좁고 고장나 있었다는 점 등 이번 사건이 자연재해보다는 인재(人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23일부터 2차 현장감식과 피의자조사 등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만큼 “화재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해 달라”고 전했다. 23일 사고현장과 장례식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범정부 차원으로 이번 사고의 원인과 대응과정을 철저하게 살피고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제천=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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