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외치자 불똥이 엉뚱하게도 성탄절로 튀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서구 문명의 문화적 침략의 하나”라며 마녀 사냥식의 공격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25일 홍콩 빈과일보와 동방일보 등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이 ‘성탄절 보이콧’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사람들에 의해 쓰러지는 등 성탄절 분위기가 최악으로 가라앉았다. 이들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관영 매체인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가 성탄절 전야 길거리의 넘쳐나는 인파와 흥겨운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廣州) 등의 일류 호텔은 예약이 꽉 차서 식당에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성탄절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지난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주창한 후 성탄절 배척 움직임이 노골화됐다. 신화통신, CCTV 등 관영 매체에서 성탄절 관련 보도는 자취를 감췄고 일류 호텔의 식당 예약률은 지난해보다 뚝 떨어졌다.
중국 공산당은 주요 기관, 대학, 공산주의청년단 등에 성탄절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거나 가게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 및 장식을 설치하는 것까지도 금지됐다. 중국공산당 청년연맹의 안후이 지부는 지난 17일 중국 메신저 위챗을 통해 “크리스마스는 중국 수치의 날”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상하이의 한 방송국은 프로그램이나 광고 등에서 성탄절 장식 등을 노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인터넷에서는 야외에 설치된 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람들이 몰려와 이를 쓰러뜨리는 동영상이 확산하고 있다.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에 따라 큰 소리로 “서양의 명절을 거부한다. 우리 문명을 계승해 중국 명절을 지내자”는 구호를 외치는 동영상도 유포되는 실정이다.
산둥(山東)성의 한 기업은 사람들을 조직해 가두 행진을 벌이면서 “수입품을 배척하고 국산품을 쓰자. 성탄절을 지내지 말고, 우리 중화를 사랑하자. 마오쩌둥 주석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 명보에 따르면 광저우의 한 교회 앞에서는 크리스마스 전날 경찰이 나서 도로를 막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처럼 ‘성탄절과의 전쟁’이 과열되면서 중국 당국도 속도 조절에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중국의 성탄절:쇼핑열풍 더하기 밸런타인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성탄절을 전후한 테러리즘의 위협으로 높은 수준의 경계태세를 보이는 가운데 중국에서 지방정부와 교육기관의 산발적인 제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성탄절 축하분위기가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매체는 “크리스마스는 쇼핑과 연애의 적기(適期)”라며 반감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중국 사업가들은 성탄절을 소비 축제로 돌리기 위해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식당과 술집, 기타 요식업 관계자들에게 성탄절은 좋은 사업기회”라고 전했다.
중국 당국의 성탄절 보이콧 운동에 상당수 중국 네티즌들은 조롱을 보내고 있다. 한 네티즌은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서기(西紀), 신정(新正·양력 1월 1일) 등이 모두 서양에서 들어온 것인데, 이 모든 것을 금지하란 말이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시 주석이 2010년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노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유포하며 당국의 조치를 비웃기도 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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