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정부는 ‘2018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하면서 내년 하반기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투자하는 회사의 배당, 사외이사 선임 등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지난해 말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이 공표됐으나 1년 동안 17개사가 도입하는 데 그쳤다. 연기금은 한 곳도 도입하지 않았다.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하고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취지지만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경영을 옥죌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도입 찬성 쪽은 스튜어드십 투자가 세계적 추세이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우리 산업과 경제 전반을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 이에 연기금을 정부가 관리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전면 도입하면 기업 경영 간섭과 관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권 행사의 모범규준으로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자율 지침이다. 2017년 5월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민주화 내에 국민연금을 정치·경제권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주주권 행사 강화로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겠다고 천명했다. 그 방법으로 정부, 가입자 대표, 공익 대표 등 국민연금 거버넌스를 확립하고 사회책임 투자 원칙에 입각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를 개선하고 총수일가에 의한 기업 불법·편법 지배 및 상속 방지,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 침해 방지, 사외이사 임면 등 사안에 대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주주로서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미흡했다는 반성 이후 기관투자가의 경영감시 기능이 강조됐다. 2017년 말 기준 20개 국가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국내도 2016년 공표돼 시행되고 있다. 일반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들이 참여하는 것과 거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전면적으로 2018년 하반기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이 기업과 시장에 미치는 힘은 막강하다. 2017년 3·4분기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기업이 275개, 10%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이 84개이며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 지분가치의 합이 117조원에 이른다. 이는 연기금의 개별종목 투자 비중 10% 이상을 금지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2013년 개정되면서 2013년 기업 수 기준으로 2배, 지분가치 기준으로 4배가 증가했다. 국민연금이 10년 내 1,000조원까지 늘어난다면 비중은 훨씬 커진다. 즉 삼성전자부터 많은 대기업과 금융회사뿐 아니라 수익을 보장하는 보다 다양한 기업의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민연금의 재원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국민에게서 나온다. 물론 국민연금에도 의결권전문기구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든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답은 그렇지 않으며 정권에 따라 바뀔 가능성이 높다. 즉 지배구조 문제, 불투명한 경영, 투자자와의 소통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래 취지와 다르게 정부가 국민연금을 이용해 민간기업에 대한 인사와 투자 등에 간섭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다시 민간기업도 관치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도입하는 것보다 지분율이나 공시 등 일정 기준을 두고 도입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해 보인다.
두 번째로 이러한 관치의 영역을 피하려면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기금운용에 대해 감독권한만 가지고 연금제도나 연금기금의 관리 및 운영을 할 필요가 없다. 만약 연금기금의 관리 및 운영을 정부가 하게 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면 바로 기업 경영에 관치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부 장관과 실무자에게 기금운용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우는 현재의 법은 개정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가 전면 도입돼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계적으로 법은 개정 및 재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즉 아직 기업의 수익성을 높인다는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다. 물론 스튜어드십 코드가 바로 전면 도입되는 경우 해외 투자가 증가하고 국민연금의 단기수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도 이는 국민연금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세계 금융위기에도 안정적이고 국내 및 해외의 튼튼한 기업에 투자해 장기적으로 좋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해외 투자가의 지분율을 고려해 국내의 좋은 기업들이 해외로 팔려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단서도 된다는 뜻이다.
전체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 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성과를 좋게 한다는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는 경우 관치, 국민연금의 구조적 문제, 아직 찾기 어려운 기업 경쟁력 향상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전면 도입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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