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만 해도 남영동 대공분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곳이라 최 검사에 대한 압박은 사실상 지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최 검사는 대공분실 요청을 거절했다. 한발 더 나아가 부검 결과에 대한 경찰의 조작 시도를 우려해 부검도 사설 대학병원에서 집도하도록 지시했다.
그가 군사정권 시절 서슬 퍼런 대공분실의 강한 압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소신의 원천은 다름 아닌 ‘현행법’이었다. 지난 1954년 9월23일 제정된 형사소송법 222조(변사자의 검시)는 변사자(자살·사고로 죽은 사람) 또는 변사(예기치 않은 사고나 재난으로 죽음)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 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 6절(변사자의 검시)에서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수사 준칙에는 검시 착수 전 변사자의 위치와 상태 등이 변하지 않도록 보존해야 하며 검시할 때에는 변사자의 가족·친족·이웃사람·친구 등이나 그 밖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를 참여시켜야 한다고도 못 박고 있다. 극 중 박씨 삼촌이 검시에 참여한 이유도 수사준칙에 따른 것이었다. 결국 “심문 시작 30분 만에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며 추궁하자 갑자기 ‘억’하고 쓰러졌다”는 대공수사처의 공식 발표는 ‘법과 원칙’이라는 대전제 아래 무너지면서 6월 항쟁의 불씨가 됐다.
검찰 관계자는 “변사자나 변사 의심자에 대해서는 검사 지휘 아래 반드시 검시를 해야 한다는 게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기본적 내용”이라며 “검시에서 화장까지 가족 동의나 검사의 수사 지휘 등 엄격한 절차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특히 검시를 방해한 경우 현행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형법 제163조(변사체검시방해)에 따르면 변사자의 사체 또는 변사의 의심 있는 사체를 은닉하거나 변경, 기타 방법으로 검시를 방해한 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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