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중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된 세계무역기구(WTO) 제11차 각료회의는 합의문조차 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끝났다.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부진해진 2007년 이후 10년이 되도록 세계무역을 관장하는 기구로서의 변변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면에는 다자무역체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WTO 탈퇴를 언급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WTO 무시 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WTO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WTO 분쟁해결절차(DSU)에 불만을 표시하고 폐막일 직전에 귀국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다자무역체제는 모든 회원국이 동일한 국제통상규범을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최혜국대우(MFN)와 내국민대우(NT)를 통해 약소국도 국제무역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다자무역체제의 설계자이면서 주도국이었다. 2차대전 직후 미소 냉전체제가 구축됐고 미국은 자유주의 시장경제 서방의 리더국가로 ‘관세와 무역에 대한 일반협정(GATT)’을 통해 서방 국가 간 국제교역 활성화와 경제성장을 이끌어, 시장경제질서가 구소련 주도하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우월한 체제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시기 미국은 자국의 시장을 개도국에 제공하고 경제성장을 지원했다. 1970~1980년대 우리나라가 고도성장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도 GATT 체제 덕택이었다.
한편 미국은 자국의 산업이 필요로 하는 무역규범을 GATT 체제를 통해 다자통상규범으로 확립해나갔다. 1986년부터 협상이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는 당시 미국이 희망했던 통상규범을 가장 많이 다자체제화했던 기회였다. 오늘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특허·저작권 등 지식재산권도 이 시기에 포함됐고 서비스무역 자유화도 미국의 제안으로 UR 협상에 포함됐다.
UR 당시 미국은 상품수지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미국이 앞선 서비스 수출과 지재권 로열티로 상품수지적자를 상쇄시키는 대외경제전략을 추진했다. 범용 제조업 제품은 수입하고 핵심 고부가가치 기술상품과 서비스·지재권 등에서의 글로벌 경쟁력 우위를 통해 미국 산업경제를 고도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전략은 개도국의 시장개방과 규제 완화를 통해 미국 기업의 해외영업 환경을 개선하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발전하게 됐다.
워싱턴 컨센서스 개념이 WTO로 확대되면서 2001년 미국은 중국을 WTO에 가입시키게 됐다. 하지만 2007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에 처한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노골화시켰다. 몇 년 후 셰일가스 혁명과 4차 산업혁명으로 미국은 제조업 부활의 기회를 잡게 됐다. 미국 내에서 공장을 돌려도 승산이 있게 되자 자국 시장보호에 나서게 된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조치 피해국들이 WTO 협정 위반을 이유로 미국을 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하고 있고 미국이 무역제재 대상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자 최근 10여년 사이 미 행정부는 WTO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는 했다. 한마디로 미국 우선주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WTO를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다. 냉전체제가 사라진 현 상황에서 WTO 협정을 이유로 자국 내수시장을 다른 국가에 개방할 필요가 없다는 우파진영의 논리도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이러한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내수시장 규모가 작으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WTO의 발전과 개방적인 통상환경이 경제발전에 필수적이다. WTO 체제가 무력화될 경우를 고려해 통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통상당국은 여러 차례 통상정책로드맵을 발표했지만 WTO 체제 약화에 대한 대응은 제시되지 않았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보다 내실 있게 추진하고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 등 주요 교역상대국과의 긴밀한 양자 통상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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