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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악법은 악일 뿐 법이 아니다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사람들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별 생각없이 내뱉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도 크게 반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법으로 평생 밥벌이를 해 온 경험에 비춰 볼 때, 이 말보다 더 법치주의에 해로운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에는 악법이 참 많았다. 먼저 ‘상민과 천민은 서로 혼인하지 못한다’는 양천통혼금지법(良賤通婚禁止法)이 있었는데, 한 사건을 보자. 청송에서 부금이라는 노비와 가이라는 양민 처녀가 혼인을 해서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들의 혼인이 관에 알려지자 둘은 강제이혼을 당하고, 여인은 손다라는 왜인의 아내로 보내진다. 그러나 억지로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된 여인이 행복할 리 없었다. 딴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을 맞은 사내의 삶도 마찬가지라 둘의 불화는 극에 달했다. 그러다 여인의 불행을 보다 못한 전 남편이 그 왜인을 죽여 버리는 바람에 부금과 가이는 나란히 살인범이 됐다. 그 후 재판에서 관의 권위로 왜인의 아내가 된 사정이 참작돼 겨우 능지처참은 면하지만,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다.

‘어미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된다’는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이 있었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이 역모죄로 사형되는 바람에 심씨 집안의 사내들은 모두 죽고, 여자들은 노비가 된다. 소헌왕후의 어머니도 당연히 노비로 떨어졌는데, 법에 따르면 소헌왕후는 물론 그녀의 자식들 중 보위에 오른 왕(문종, 세조)과 함께 후대의 왕들도 모두 노비가 돼야 한다. 또한 왕과 왕비는 만백성의 어버이이니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노비가 되는 셈이었다.

엄격한 신분사회인 조선에서는 양반능멸죄(兩班凌蔑罪)가 다른 어느 법보다 상위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상민인 부녀자가 겁간을 당해도 그 상대가 양반이라면 물리적으로 저항했다가는 영락없이 중죄인이 됐다. 과거 우리 역사에는 인륜이나 섭리를 거스르는 악법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조차 어렵다. 그 중에서도 해금(海禁)과 쇄국(鎖國)은 수많은 백성들을 굶겨죽이다 못해 나중에는 망국에 이르게 한 대표적인 악법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과거 역사의 잔재로부터 자유로운가? 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요즘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국민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더 나아가 국민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일이 흔하다 못해 아예 관행이 되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을 가리지 않고, 공무원들은 법을 이용하여 규제나 책임회피를 하려들 뿐 진정 국민을 위한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생각해보면 악법만큼 사회적으로 해로운 게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그 사회적 해악은 악법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악법의 사회적 해악을 아무도 논하지 않을까? 그 해악을 논하기는커녕 “고대 그리스의 현인인 소크라테스가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면서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며, 오히려 감싸고 돈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억울한 심정에 “죽으라면 죽어야지, 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을 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과거 우리나라의 교과서에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기꺼이 독배를 들었다”고 버젓이 실렸으니, 국제적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선의 양반들이 차별과 특권유지를 위해 공맹의 도를 왜곡한 것처럼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현대에 들어 서양 현인의 유언을 날조한 것과 다름이 없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구호는 이제 우리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리 법치주의를 외쳐봤자 공염불이다. 양식과 현실에 동떨어진 법을 아무 죄책감 없이 만들어 안기면서 국민들에게 무조건 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법의 남용이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보면 무조건 법에 순종하기보다는 잘못된 법을 따지고 대드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법치주의를 위해 바람직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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