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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만족형 콘텐츠에 파묻힌 일상

취업 스트레스·격무에 무기력해지는 번아웃 증후군 만연

"취미 즐길 시간·경제적 여유 없다"

국민 60%가 TV시청·인터넷 앞에

여행·맛집 TV 프로그램 등 인기

VR로 골프·야구 등 간접 체험

"감각 둔감화 우려…직접 체험을"





격무에 시달리던 직장인 박정환(29·가명)씨는 연말 연휴를 며칠 앞두고 부랴부랴 여행 사이트를 뒤졌다. 하지만 항공권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솟아 있었다. 결국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일에 치여 살다 보니 피곤하기도 하고 경비도 많이 들어 직접 여행을 떠나는 게 쉽지 않다”며 “가고 싶었던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소개해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연휴를 보냈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에 쫓기는 대학생과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욕구를 간접적으로 충족시켜주는 대리만족형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취업 한파와 직장 내 경쟁으로 현대인의 정신·육체적 소모가 크다는 점과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심신의 피로가 쌓여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는 ‘번아웃 증후군’이 만연하면서 여가생활이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직접 체험보다 간접 체험을 선호하게 됐다는 말이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실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여가활동은 TV시청(46.4%)이나 인터넷(14.4%) 등 신체활동이 거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산책(4.3%)과 헬스(2.4%) 등 신체활동이 활발한 여가활동을 즐기는 이들은 드물었다.

대리만족형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시간 부족과 경제적 부담이다. 지난해 서울연구원의 ‘서울시민의 여가활동’ 자료에 따르면 여가활동에 불만족을 느끼는 사람 가운데 63.2%가 경제적 부담을 원인으로 꼽았다. 시간 부족(19.1%)과 체력·건강 문제(6.9%)가 뒤를 이었다. 시간과 비용을 이유로 여행과 맛집 방문 등 직접 체험이 어려운 이들을 노린 ‘배틀트립’ ‘오지의 마법사’ ‘패키지로 세계일주’ ‘수요미식회’ 등 대리만족형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는 직장인 김지이(28)씨는 “직접 가보지는 못하지만 TV로나마 관심 있는 나라의 음식이나 문화를 볼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간접 체험할 수 있는 VR 콘텐츠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VR기기 판매는 전년 동기보다 6% 상승했다. 특히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VR 콘텐츠로는 스크린골프와 야구·낚시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가생활이 삶의 활력소를 주는 중요한 신체활동인 만큼 간접 체험보다 직접 체험에 나설 것을 권유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대리만족형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이들은 타인의 취향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감각 둔감화’ 증상을 겪을 수도 있다”며 “여가활동은 신체·정신 건강에 유익한 것이므로 보고 듣고 맛보면서 직접체험을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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