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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hy] 가상화폐 발행 서두르는 신흥국…코인이 금광 될까

美·서방 제재에 손발 묶이자 자금조달 창구로 주목

국제사회 신뢰 낮고 기술개발 어려워 성공엔 부정적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일부 ‘문제 국가’들 사이에서 정부 차원의 독자적인 가상화폐를 발행하겠다는 선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수년간 이어진 유가 하락으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데다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까지 겹쳐 손발이 묶이자 가상화폐 발행을 자금조달 창구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최근에는 “가상화폐는 다단계 사기”라며 거래를 원천금지했던 러시아마저 정부공인 가상화폐 ‘암호루블’을 발행하겠다고 가세하면서 서방과의 대립구도 속에 돈줄이 막힌 신흥국 정부의 가상화폐 발행은 점점 가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모스크바=AFP연합뉴스




‘가상화폐는 다단계 사기’라던 러

“전세계와 돈 주고 받을 수 있다”

푸틴 크립토루블 발행 직접 지시

지난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 정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가상화폐인 암호루블을 만드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인 세르게이 글라지예프는 최근 정부 모임에서 “가상화폐 발행은 국가를 위한 민감한 활동을 하기에 적합하다”며 “우리는 제재를 고려하지 않고 전 세계의 상대와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상화폐는 루블과 마찬가지지만 유통은 제한될 것”이라며 “러시아 정부가 유통경로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해까지도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등 강력한 제재에 나섰던 데서 완전히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해 10월 푸틴 대통령은 “가상화폐가 사기 및 돈세탁으로 활용되는 등 심각한 위험상태에 있다”고 밝힌 뒤 “우리는 가상화폐 분야에서 국민·기업·정부 등 모두의 이익을 확실히 보호하기 위해 국제기준에 맞는 규제 시스템을 개발해나가야 한다”며 가상화폐 거래 당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한 바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카라카스=EPA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유가하락에 경제 파탄

올 인플레이션율 2,349% 달하자

마두로 대통령 “새 코인으로 돌파”

남미의 골칫거리 베네수엘라도 정부가 가상화폐 직접발행을 선언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2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국영 VTV에 출연해 “(미국의) 금융봉쇄에 맞서 싸우기 위해 ‘페트로’로 명명한 디지털화폐를 도입한다”며 “가상화폐특별팀을 구성해 금과 다이아몬드 등 전국의 모든 자원에 대해 해당 지방정부와 가상화폐 발행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네수엘라의 구상은 1페트로를 1배럴의 원유로 보증하는 식으로 가상화폐 가치를 원자재 가치와 연동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는 △원유에 편중된 경제구조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 △미국 등 서방의 제재 대상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졌다. 러시아의 경우 지난 2011년까지 4%대였던 성장률이 유가 하락과 서방 제재의 여파로 2015년 -2.5%까지 추락했다가 지난해에서야 1.8%로 반등했다. 2014년 1월에만도 1달러당 32.8550루불이었던 통화가치는 2016년 1월 74.5320루블을 기록하며 126%나 폭락했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계기로 본격화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의 경제제재는 최근 북한과의 연계를 차단하려는 미국의 압박으로 더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유가 하락과 좌파정부의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이 맞물리면서 경제가 파탄 난 상태로 볼리바르화는 사실상 휴짓조각과 다름없어졌다. 2013년 마두로 대통령 취임 당시 1달러당 22볼리바르에 거래되던 볼리바르는 현재 암시장에서 달러당 11만9,780볼리바르까지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베네수엘라 성장률이 12%의 역성장을 기록했으며 올해 인플레이션율은 2,349%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해 8월 마두로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고위관료와 금융회사 등을 제재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자금줄은 완전히 말라버렸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와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금융규제에 맞설 새로운 자금조달 루트로 가상화폐 발행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가상화폐를 정부 영향력 아래 두려는 국가는 이 밖에도 다수 있다. 핵협정과 반정부시위를 둘러싸고 연일 트럼프 대통령과 말폭탄을 주고받는 이란은 “국가의 이익과 일맥상통한다”며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로 미국과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비트코인 해킹을 새로운 외화조달 창구로 삼고 있다는 움직임도 연일 감지된다. 지난해 11월 초 발행한 쿠데타로 37년 동안 집권한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이 축출되는 등 정정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비트코인은 국제시세보다 높은 값에 거래되며 안전자산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다만 가상화폐를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이들 국가의 시도가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비트코인 등 기존 가상화폐의 변동성이 워낙 큰 상황에서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정부가 발행하는 가상화폐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나 베네수엘라처럼 올해 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 정적의 출마를 원천봉쇄할 정도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탈중앙화’를 표방하는 가상화폐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은 모순적 행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 정보기술(IT) 전문매체 기즈모도는 “베네수엘라가 블록체인 기술을 수립하기 위해 어떤 프로토콜을 시행할지 의문”이라며 “가상화폐는 오픈소스 코드 방식이 특징인데 정부 발행 가상화폐의 소스가 다 공개되면 안전성에도 적잖은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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