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180만원가량의 수입을 올리던 직장인 A씨는 이혼을 하고 자녀 1명의 양육비로 월 70만원을 지급하기로 전처와 합의했다. 이후 A씨는 개인회생절차를 법원에 신청하게 됐고 채권자들에게 갚을 빚과 월생계비를 나누면서 양육비 70만원을 생계비에 포함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생위원과의 협의 끝에 실제 변제계획안에서 인정된 양육비는 35만원에 그쳤다. 이에 전처는 가정법원의 양육비 직접지급명령을 통해 A씨의 급여를 압류했고 A씨는 변제계획을 이행하지 못한 채 재기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올해부터는 A씨처럼 양육비 지급 문제로 인한 개인회생 신청자들의 실패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법원은 채무자 개인이 자율적으로 주던 양육비를 최우선 변제해야 할 채권에 포함시켜 전액 지급하는 내용의 개인회생제도 개선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회생절차를 밟는 채무자들이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면서 빚도 차질 없이 갚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미국의 파산법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이 지적한 ‘파산 신청자 뒤에 있는 자녀들의 고통’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다.
5일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이번 개인회생제도 실무개선안은 지난해 말 시범운용을 거쳐 이달 1일 정식 시행됐다. 과거에는 이혼한 개인이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양육비를 추가 생계비에 포함시켜 배우자(양육비 채권자)에 주도록 했다. 채무자가 주장하는 양육비도 전액 인정되는 게 아니라 재판부별로 인정금액이 달랐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기존에는 양육비 지급 이행도 자율적이어서 실제로 지급되는 사례가 많지 않았고 배우자와의 양육비 분쟁이 발생해 전체 변제계획안에 지장을 주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새로 시행되는 개선안은 양육비를 회생절차에서 최우선으로 변제해야 할 채권인 ‘개인회생재단채권’에 포함시켰다. 이렇게 되면 양육비가 매월 확실히 지급되고 배우자는 개인회생재단채권자로서 채무자의 재산상태를 살펴볼 수도 있다. 법원은 채무자가 소명한 양육비를 전액 인정하되 가정법원의 양육비 기준표에 비춰 과다할 경우 감액심판을 통해 일부 보정하기로 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개선안 시범사례를 보면 배우자와의 양육비 다툼 때문에 전체 변제계획에 지장을 받는 일이 없어 다른 채권자들도 만족했다”면서 이번 개선안이 회생절차의 원만한 이행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인회생제도 개선안은 서울회생법원과 서울가정법원이 연계한 회생·파산절차 개선의 일부다. 앞서 두 법원은 지난해 가정법원에서 상속재산 ‘한정승인’을 받은 상속인이 회생법원의 ‘상속재산파산’ 제도를 이용하도록 안내하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이는 고인의 빚 정리를 법원이 대신함으로써 상속인들이 채무정리가 두려워 상속을 지레 포기하는 일을 막기 위한 정책이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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