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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신완식 요셉의원 의무원장 "봉사, 거창하게 생각 마세요...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국내 감염질환 최고 권위자

잘나가던 의대교수직 던지고

10년째 노숙인 등 무료진료

하루 평균 100명 환자 찾아

의료봉사 의사만 50명 넘어

환자 몸만 낫게 하는게 아니라

마음 치유하는 '전인치료' 노력





신완식 요셉의원 의무원장은 이름난 의사였다. 면역기능이 저하된 환자에게 생기는 감염질환을 치료하는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통했다. 대한감염학회 회장과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내과과장을 지냈다. 유한의학상과 송촌 지석영 GSK의학상도 받았다. 그런 그가 지난 2009년 정년을 6년이나 남겨두고 가톨릭대 교수직을 버리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다들 의아해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하게 했을까.

“막연히 교수로서만 인생을 마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봉사하는 삶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 했죠. 정년을 마치고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대학과 병원에 사표를 내고 당시 가톨릭중앙의료원장을 맡고 있던 최영식 신부를 찾아갔다. 사표를 냈다는 신 원장의 말에 최 신부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의료봉사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던 신 원장에게 최 신부가 제안한 곳이 요셉의원이었다. 노숙인과 행려병자들을 무료로 치료하는 요셉의원은 설립자인 선우경식 원장이 2008년 선종(善終)한 뒤 혼란을 겪고 있었다. 신 원장은 최 신부의 제안을 두말없이 따랐다.

‘빈자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고(故) 선우 원장과는 오래전 연(緣)을 맺었다. 선우 원장은 신 원장의 대학 7년 선배다. 1980년대 초반 내과 전문의 자격시험 공부를 함께하기도 했다. 신 원장이 ‘족보’를 구해다 주기도 했다. 신 원장에게 의뢰한 환자가 잘못되자 선우 원장이 위로주를 산 적도 있다. 이후로는 행사장에서 스쳐 지나듯 만났을 뿐 깊게 교유하지는 못했다. 선우 원장이 요셉의원을 세워 빈자들을 돌보는 데 여념이 없었고 신 원장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바빴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먼발치에서 지켜보면서 선우 원장님의 삶이 존경스럽고 부러웠습니다. 그렇다고 감히 선우 원장님의 뒤를 잇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우연 같은 필연이 있다고. 선우 원장님과는 이렇게 이어질 인연이었던 것이죠.”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왔지만 초기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거인(巨人)의 그림자가 컸던 탓이다. 선우 원장이 힘겹게 일궈놓은 자리에 무임승차한다는 시선도 있었을 게다. 동료 의사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환자들도 신 원장을 낯설어했다.

“처음에 와보니까 환자들이 제 말을 잘 안 들었어요. 환자도 몸 상태에 따라 약 처방이 달라져야 하는데 막무가내로 예전에 먹던 약을 처방해달라는 겁니다. 선우 원장이 처방한 약을 먹고 잘 살았는데 왜 바꾸려 하느냐는 얘기였죠. 무료 봉사하는 의사들도 처음에 곁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면담도 하고 편지도 쓰고 했는데 호응이 별로더군요.”

진심을 알아줄 때까지 몸을 낮추고 성심으로 환자를 돌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간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신 원장은 비로소 요셉의원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신 원장이 진료를 보는 공간은 선우 원장 기념관이기도 하다. 선우 원장이 받았던 훈장과 생전에 입었던 가운을 비롯해 각종 유품이 전시돼 있다. 유품을 볼 때마다 선우 원장을 떠올린다.

“늘 선우 원장님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속에서 ‘신완식이 너 어떻게 하는지 내가 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몇 해 전에 다녀간 국제 구호단체 관계자가 요셉의원 진료표를 보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진료 의사 모두 전문의이고 돈 한 푼 받지 않고 진료를 한다고 하니 더 놀라워했습니다. 금일봉을 내고 갔는데 미국으로 돌아가서 5,000달러를 추가로 보내왔습니다. 미국에도 요셉의원 같은 곳이 흔하지 않다면서요. 그런 곳인 만큼 잘 운영하고 지켜가야지요.”



20년 이상 대학교수로 살면서 많은 제자에게 의술을 가르쳤지만 요셉의원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무료 진료를 받는 것이 못내 미안한 노숙자들이 술값을 아껴 사탕이나 초콜릿을 사다주는 모습이나 꼬깃꼬깃한 지폐를 몰래 병원 벽 틈에 밀어넣고 가는 것을 볼 때면 뭉클해진다. 악취가 진동하는 노숙자의 몸을 정성스레 닦아주는 목욕 봉사자들이나 가정이 있음에도 만사 제쳐놓고 의료진 곁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 봉사자들에게서 삶의 또 다른 비의(秘義)를 발견한다.

“요셉의원으로 올 때 정진석 추기경을 뵌 적이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전인적 치료’를 당부하시더군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단순히 환자의 몸만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아직도 부족하지만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전인적인 치료를 위해 더 노력해야죠.”



요셉의원은 지난해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여전히 허름한 건물에 입주해 있고 의료기기도 낡았지만 노숙자와 행려병자들에게는 최신식 대형 병원보다 포근하고 만족스러운 곳이다. 하루 평균 100명 안팎의 환자가 병원을 찾는다. 무료로 진료 봉사하는 의사만 50명이 넘는다. 내과를 비롯해 치과·안과·정형외과·비뇨기과·신경외과·피부과·한의과·정신의학과·영상의학과·통증클리닉 등 진료과목도 웬만한 종합병원 수준이다. 각자 몸담고 있는 병·의원에서 바쁜 몸이지만 짬을 내 봉사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신 원장은 ‘인술(仁術)’의 의미를 깨닫곤 한다. 신 원장도 월·수·금요일에 직접 진료를 본다.

“봉사자와 후원자도 그렇지만 의료진도 요셉의원에 대한 충성도가 엄청 높습니다. 사정이 생겨 무료 진료 봉사를 못하게 되면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대신 후원금을 보내주시기도 해요. 매달 100만원씩 후원금을 내는 의사분이 계시는데 ‘무료 진료는 못하지만 요셉의원을 도우려면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하시죠. 한없이 고마운 분들이죠.”

올해로 요셉의원에 몸담은 지 10년째를 맞는 신 원장은 요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되뇌곤 한다. 선우 원장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했을 때의 마음 자세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는가 싶어서다. 가끔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다 보니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경계할 필요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해외 봉사활동도 열심히 다닌다. 지난해 4·4분기에만 잠비아와 필리핀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무료봉사라는 뜻의 ‘볼런티어(volunteer)’는 원래 ‘신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요. 나눔이나 봉사라는 말 자체가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시혜적인 느낌이 들어서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봉사하는 삶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거나 어렵게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면 됩니다. 봉사자들에게 한 달에 몇 번 나와 달라고 하지 않아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나와서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조금 더 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모이면 큰일이 될 수 있지요. 선우 원장님도 처음 요셉의원을 만들었을 때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을 것입니다.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해요. 언젠가는 부름을 받을 겁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50년 서울 △1977년 가톨릭대 의대 △1990년 가톨릭대 의대 대학원(의학박사) △가톨릭대 의대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과장 △대한감염학회장,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장, 대한면역저하환자감염학회장 △가톨릭 세포치료사업단장 겸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가톨릭의료협회 의료봉사위원장 △한국에이즈예방재단 이사 △서울시 의사회 의학상, 송촌 지석영 GSK의학상 △요셉의원 의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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