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후 20년 넘게 저를 사로잡은 것은 ‘꿈’이라는 화두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대이든 꿈꾸는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로 42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손홍규(43·사진)는 8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꿈을 모티브로 삼은 이번 작품을 쓰면서 꿈에서 일어난 일을 꿈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에 이식하고자 했던 카프카를 끊임없이 상기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이상문학상은 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과 더불어 국내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올해 대상을 받은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부부의 인연으로 얽힌 공장 일용직 노동자 ‘영택’과 병원 조리사인 ‘순희’의 고단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노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과 이를 억압하는 자본의 폭력을 밑그림으로 깔고 세월의 흐름 속에 잃어버린 순수한 인간성을 성찰한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마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처럼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逆順) 구조를 취하고 있다. 독자들은 삶에 찌든 두 남녀가 젊은 시절 얼마나 충만한 감정으로 서로를 사랑했는지를 작품 말미에 이르러 확인하게 된다.
손홍규는 “두 주인공은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마치 꿈을 잃어버리듯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을 잃고 말았다”며 “인물들의 ‘마음의 구조’를 따라가면서 그들이 상처받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설가 이상은 제가 가장 경외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며 “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무겁고 귀중히 받아들인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심 심사에 참여한 권영민 문학평론가는 대상 선정 이유에 대해 “인간다움의 회복을 강조하는 손홍규의 작품은 장편의 역사성과 단편의 상황성을 절묘하게 결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폭력을 둘러싼 장면들은 일종의 환상적 기법을 통해 짧게 서술되고 있다”며 “리얼리티를 추구해 온 작가의 새로운 실험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지난 2001년 단편 ‘바람 속에 눕다’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손홍규는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장편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등을 펴냈다. 노근리 평화문학상과 오영수문학상·채만식문학상·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0년대에 등단한 젊은 작가가 국내 최고 권위의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김애란(2013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한해 동안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이상문학상 본심 심사에는 권영민 평론가를 비롯해 권택영·김성곤·정과리(이상 평론가)·윤후명(소설가) 등이 참여했다. 우수상에는 구병모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방현희의 ‘내 마지막 공랭식 포르쉐’, 정지아의 ‘존재의 증명’, 정찬의 ‘새의 시선’, 조해진의 ‘파종하는 밤’이 뽑혔다. 오는 19일 출간되는 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는 대상·우수상 수상작이 모두 실린다. 상금은 대상 3,500만원, 우수상 300만원이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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