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경제 학술행사인 전미경제학회가 7일(현지시간)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한 가운데 마지막 날 세션에서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노동시장’에 관한 경제학자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며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기술혁신으로 로봇이 인간의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상황에서 고용 수요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해법을 논의하는 데 경제학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회의장을 더 넓은 곳으로 옮길 정도였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75세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실업과 혁신’을 주제로 한 새 논문을 직접 발표하며 후학들과 토론을 벌여 기립박수를 받았다.
대런 애스모글루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는 이날 세션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쟁’이라는 주제의 논문 발표를 통해 “그간 기술 진보는 생산과 실질임금 증가를 동시에 촉발했지만 앞으로 이 같은 경향이 지속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AI를 통한 혁신속도가 빨라지고 자동화와 로봇이 인력 수요를 대체하면서 임금수준이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자동화에도 인간의 노동 비중이 줄지 않고 경제가 균형성장(한국의 경우 3~4%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한 답을 서비스 산업 고도화에서 찾아야 한다며 인간만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정교해지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는 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령 AI 시대에도 요가 강사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텐데 요가 전문가가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고객에게 건강관리나 상담 등 추가 서비스를 발굴·제공하면 소득이 늘고 일자리도 증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통 경제학의 대가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젊은 학자와 연구원들에게 “혁신으로 후생이 늘어난다고 예단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기술 진보는 시장경제에서 필연적으로 ‘무임승차자(free rider)’를 양산하기 때문에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AI와 로봇으로 임금이 떨어지면 혁신을 지속하기보다 그냥 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수요가 생긴다”면서 “시장경제에서 혁신이 초래하는 비효율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로봇세를 도입해 교정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세션의 좌장을 맡은 에릭 브린욜프슨 MIT대 교수도 “고도의 자동화 속에서 생기는 초과이익을 기술 발명자나 자본가만 가져갈지, 노동자나 공공 부문에는 어떻게 분배할지가 향후 큰 논란이 될 것”이라며 로봇세 도입이 일정 부분 불가피함을 시사했다.
앤드루 버그 국제통화기금(IMF) 리서치국 부국장은 “AI를 통한 자동화가 어떤 식으로든 성장에 기여하겠지만 불평등 문제는 더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AI 시대의 승자는 고급 기술자와 자본가가 되고 저숙련 노동자는 패자(loser)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스티글리츠 교수는 “기술혁신이 완전고용 달성을 위한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에 새로운 난제가 되는 현상을 찾을 수 있었다”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론 각국 중앙은행들에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AI 시대에 자동화를 통한 초과수익이 늘어날수록 자본의 상대적 가치가 떨어진다”면서 “기준금리를 낮춰 투자를 늘리고 고용 확대를 겨냥하려는 통화정책은 앞으로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라델피아=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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