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탈세·횡령 의혹에 휩싸인 부영그룹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부영 압수수색은 국세청 고발 이후 1년 9개월 만에 이뤄진 검찰의 움직임이다. 이미 수사대에 오른 대기업들이 상당수인데다 새로 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법조계 안팎에서는 부영그룹 수사가 올해 기업 사정의 ‘신호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적폐수사 등으로 대기업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만큼 오는 2월 평검사 등 인사를 기점으로 재계에 사정 바람이 거세게 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구상엽 부장검사)는 9일 서울시 중구 부영 사옥을 비롯해 부영주택 등 계열회사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들 사무실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주택사업 등과 관련한 각종 회계장부와 내부 문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이번 수사는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각각 2016년 4월과 지난해 6월 부영을 검찰에 고발한 데 따른 조치다.
검찰은 국세청이 고발한 탈세 혐의를 비롯해 위장 계열회사 일감 몰아주기, 주택사업 관련 불법행위, 유령회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을 수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동안 자료 검토 등 수사 과정에서 이중근 부영 회장이 연루된 비자금 조성 등 횡령 의혹에 대해서도 포착했다고 알려지면 앞으로 검찰의 사정 칼날이 이 회장을 정조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해 ‘비선 실세’ 최순실 사태에 이은 적폐수사로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검찰이 이제야 부영 수사에 착수했다”며 “현재 대기업을 상대로 한 수사가 다수 진행되고 있는 터라 부영을 시작으로 검찰의 대기업 수사가 본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부영 수사가 대기업을 겨냥한 사정에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부영 외에도 국세청이 고발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KT가 한국e스포츠협회에 낸 후원금이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준 뇌물인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이날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최측근 홍모씨에 대한 구속 수사에는 실패하기는 했으나 서울중앙지검 조사2부(김양수 부장검사)도 ‘효성 100억원대 비자금 관여 의혹’을 겨냥한 수사가 한창이다. 게다가 일부 대기업을 대상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할 수 있다는 말마저 나온다. 검찰이 수사관·검사 등 인사를 다음달 초까지 마무리한 뒤 업무 인수인계 과정을 거쳐 기존 수사와는 별도로 대규모 사정 작업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각종 고발이 이어진 데 따라 ‘MB 수사’와 함께 ‘대기업 수사’가 새해 검찰 수사의 두 축으로 꼽히고 있다”고 전했다.
/안현덕·김민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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