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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약자 위한 정책과 제로섬 게임

임석훈 논설위원

오프라인 유통 전세계적 위기에도

대형마트 옭아맨 채 최저임금 올려

약자배려 정책에 모두가 어려워져

이분법적 사고 벗어나 공생 꾀해야





새해 벽두인 4일(현지시간) 미국의 대표적인 백화점 체인 시어스홀딩스가 대규모의 폐점 계획을 발표했다. 132년 전통의 시어스백화점 39곳과 K마트 매장 64곳 등 모두 103개 매장이 3월 초에서 4월 초 사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시어스 측은 “수익성 없는 매장은 앞으로도 계속 문을 닫아갈 방침”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폐점 대상 백화점은 뉴욕·텍사스·일리노이 등 16개 주, K마트는 캘리포니아·펜실베이니아 등 28개 주에 퍼져 있다.

같은 날 미국의 또 다른 유명한 백화점 메이시스도 “올해 상반기 중 매출 실적이 부진한 11개 매장을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어스는 지난해 이미 250개 매장을 폐쇄했고 메이시스 역시 전체 점포의 15%에 해당하는 100여개 매장의 문을 닫은 바 있다. 백화점, 대형 마트의 불황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거나 한두 해에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시어스의 쇠락 과정을 보면 전 세계 오프라인 유통업이 처한 현실을 알 수 있다. 시어스는 2006년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 3,000여개, 캐나다에 수백 개의 매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업체의 등장과 함께 내리막길을 걸어 캐나다 사업체는 지난해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다. 미국에도 1,000개 남짓한 매장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나서서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하지 않는데도 이런 상황이다.

지난해 말 미국의 쇼핑시즌 풍속도는 여느 해와 확연히 달랐다. 추수감사절과 블랙프라이데이로 이어지는 쇼핑시즌에 가전매장이나 할인점 앞의 밤샘 줄 행렬이 거의 사라진 것. 예년 같으면 며칠 전부터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기다리다 매장 문이 열리기 무섭게 제품을 사는 고객이 많았는데 지난해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상황이 변한 것은 모바일 유통혁명 때문. 세계 최대의 축제로 성장한 중국 광군제는 온라인쇼핑의 막강한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지난해 11월11일 하루 거래액만 1,680억위안(약 28조원)에 달했을 정도다. 당시 알리바바는 패션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을 동원하고 통합형 매장 등 다양한 유통 실험을 선보이기도 했다.



세상은 이처럼 변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부·여당은 약자를 위한다며 골목상권 보호에 집착하고 있다. 대형 마트, 기업형 슈퍼마켓도 모자라 대형·복합 쇼핑몰 영업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의무 휴업을 대형 쇼핑몰로 확대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유통산업 규제가 본격화한 2012년 이후 전통시장이 살아나기는커녕 대형 마트, 전통시장 모두 뒷걸음질쳤다는 현실은 외면하고 프랑스·일본이 대규모 유통점포의 영업시간 제한, 의무 휴업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까닭을 애써 모른 체한다. 대형 마트와 전통시장은 제로섬게임의 적대 관계가 아니라는 지적에도 아랑곳없다. 경제논리보다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듯 모바일 시대에 오프라인 유통매장은 경쟁력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대형 마트, 쇼핑몰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말고와 상관없이 결국 생존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물결을 거슬러 지금처럼 골목상권과 대형 마트, 쇼핑몰 대결구도에만 집착해서는 유통혁명 시대에 한국은 구경꾼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발(發) 고용 한파와 물가 상승은 약자를 위한 정책에 약자들이 피해를 입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새 정부가 대기업과 가진 자는 갑(甲), 영세상인·자영업자와 노동자는 을(乙)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돼 제로섬게임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런 역풍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불안을 조장한다며 언론 등 남 탓을 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책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부작용이 심각하면 재검토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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