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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국민의 법’ vs ‘권력의 법‘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실록에 따르면, 법문을 한글로 적는 문제에 대해 당시 이조판서 허조는 이렇게 말했다. “간악한 백성들이 율문을 알면 형벌을 피하는 요령만을 터득하여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법을 농단하는 무리들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에 임금이 답했다. “그렇다면 백성들에게 법을 몰라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백성들에게 법을 알지 못하게 해놓고, 무작정 죄를 준다면 조삼모사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찍이 태종께서 이두로 법문을 번역해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법을 알게 하려 하신 것이다”

이런 논쟁이 있은지 어언 700년이 지났다. 그 세월을 거치면서 한글은 백성을 아꼈던 이도(세종대왕의 이름, 왕명보다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의 바람대로 백성들이 자유로이 사용하는 우리 말이 됐다. 그렇지만 법에 대한 사대부의 인식이나 독점욕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법은 국민들과 너무 멀리 있다. 법이 너무 많고, 복잡하고, 어려우며, 법의 운용이 특정 소수에게 독점됐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자신이 손들었던 법이 너무 많아 이름도 기억 못하고, 변호사는 물론 검사나 판사도 헷갈리기 일쑤며, 행정공무원은 제 편한대로 법을 들이댄다. 하지만 법의 본질은 일반국민의 상식을 규범으로 만든 것이라 너무 많거나 복잡하거나 어려울 이유가 없다. 또한 소수에게 독점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자연법 사상을 이어받은 사법선진국들을 보면 이들은 하나같이 수사와 기소권이 분리돼 있고, 수사와 재판은 물론 사법기관의 구성까지 중요 결정권은 일반국민(배심원이나 선거인)에게 있다. 그래서 수사나 판결에 대한 정당성이나 공정성 시비가 일어날 여지가 거의 없어 판사나 검사는 법논리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밤 세워 논리를 개발하고 말투나 옷차림까지 신경을 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와 너무 다르다. 수사와 기소권이 함께 있다 보니 검찰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 그러다보니 불법수사의 억제나 인권보장이 아니고,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 실현과 법원견제가 검찰 본연의 임무라고 객기를 부리는 이도 있다. 변호사도 의뢰인의 권익보다는 판사나 검사의 눈치를 살피고, 판사도 실체에 몰두하기 보다는 검사와 변호사는 물론 언론 등의 사회적 세력을 의식한다.

이런 현실은 판결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무죄판결문은 논리적이고 상세하게 써야 하지만 유죄판결은 거의 정형화돼 있다. 무죄판결에 대한 검사의 반발은 신경 쓰이지만 유죄판결에 대한 피고인의 원통함은 의례 그러려니 여겨서 그런가? 무죄판결은 유죄판결보다 몇 곱절 더 고민스럽다. 그래서 업무가 많다 못해 혹사를 당한다는 판사나 검사들에게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법격언에 충실하길 바라는 것은 섣부른 욕심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법절차에는 일반국민의 건전한 법감정이나 상식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예측가능성도 없다. 이 때문에 수사와 재판의 과정이나 결과가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져도 이를 바로잡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소동만 벌어질 뿐이다. 이를 보면 우리의 법은 아직 ‘권력의 법’에 머무를 뿐 ‘국민의 법’에 이르지 못했다. 입법은 당연하고 법의 해석과 적용까지 몽땅 가진 사람들의 몫으로 오롯이 남아 있다. 그런데다 이런 풍토가 당연시 되고, 좀체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 보매 700년 세월을 거치는 동안 한글은 우리말이됐지만 한글을 반대했던 사대부의 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낙담만 할 수는 없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거늘 모든 것이 백성들의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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