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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행주산성]당당한 권율동상...우뚝 솟은 대첩비...'호국의 얼' 되새기다

입구에 자리잡은 높이 8m 동상

권율장군의 영정 모신 충장사

행주대첩도 등 전시한 기념관

발 닿는 곳마다 역사의 흔적이

정상 오르면 한강 절경이 그득

행주산성 정상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대첩비각(왼쪽)과 행주대첩비.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관찰사였던 권율(1537~1599)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의병과 승병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친 전투로 진주대첩·한산도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임진왜란 때인 선조 26년(1593년) 권율 장군은 행주산성을 요새로 삼아 2,300명 남짓한 인원을 이끌고 3만명의 왜군을 격퇴시켰다.

행주산성의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성 안에서 발굴된 유물을 근거로 백제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행주대첩은 당시 관군과 의병은 물론 부녀자들까지 일할 때 치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위에 겹쳐 입는 짧은 치마로 돌을 나르면서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겨났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산 정상에 위치한 행주산성은 맹추위 속에서도 위풍당당했다. 산성 탐방 길은 행주산성공원에서 시작하는 둘레길 1구간 대신 대첩문에서 출발하는 2구간을 선택했다. 대첩문은 3개의 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평소에는 오른쪽 문만 열려 있다. 행주대첩제나 행주문화제·해맞이 등의 축제를 개최할 때만 문 3개를 모두 개방한다고 한다.

행주산성 대첩문 앞에 세워진 권율 장군의 동상.


입장권(성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300원)을 구매하고 대첩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권율 장군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지난 1986년 건립된 이 동상은 좌대(座臺)의 높이까지 포함하면 8m가 넘는다. 영의정의 막내아들이었던 권율은 젊은 시절 관직에는 별 뜻이 없었고 산과 들을 누비며 무예를 기르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45세(1582년)라는 늦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긴 했으나 평범한 성적인 병과로 급제해 권율은 한동안 집안의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스스로 갈고 닦은 무예가 임진왜란에서 빛을 발하며 그는 역사가 두고두고 기억하는 조선의 대표적인 명장이 됐다. 동상 뒤편 벽면에는 치열한 항전의 생생한 모습이 부조(浮彫)로 표현돼 있었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옆으로는 한겨울에도 푸른 기상을 떨치는 소나무가 장군을 호위하듯 서 있었다.

동상을 뒤로 하고 산책로를 따라 발걸음을 뗐다. 산책로 양옆에는 알록달록한 천 위에 ‘送舊迎新(송구영신)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한자가 적힌 전등이 매달려 있었다. 따스한 봄이면 꽃분홍 철쭉과 개나리가 활짝 피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길이지만 햇볕의 기운에도 녹지 않고 소복이 쌓인 눈은 겨울의 한복판을 통과하는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


350m가량 천천히 오른 뒤 우측으로 방향을 틀자 충장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충장사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명칭은 장군의 시호인 ‘충장공(忠將公)’에서 따왔다. 행주대첩 이후 250년 이상이 지난 뒤 헌종은 뒤늦게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비석과 사당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뒤 지난 1970년 정부가 행주산성 재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사당을 지었다.

충장사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대첩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은 행주산성 전투 당시 사용된 각종 무기와 승전 당시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행주대첩도 등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입구에 설치된 안내문은 행주대첩의 4대 요인으로 △권율 장군의 완벽한 전술 △과학적으로 설계된 최신식 무기 △강과 절벽 등 자연스럽게 배수진이 형성된 지리적 조건 △민·관·군·승려·부녀자가 함께 목숨을 건 혼연일체의 정신을 꼽고 있었다.

행주산성에서 내려다본 한강과 방화대교.


행주산성의 하이라이트는 기념관에서부터 정상까지 이르는 행로다. 기념관을 빠져나와 150m 남짓 오르면 산성 재정비사업 당시 세워진 덕양정이 나온다. 덕양정 오른편에 위치한 또 다른 정자인 진강정은 둘레길 2구간으로 통하는 길이다. 덕양정 안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후의 햇살 아래 반짝이는 한강과 강을 가로지르는 방화대교가 탁 트인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시간을 내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옷깃을 여미고 가만히 새해 소망과 다짐을 속으로 되뇌었다. 행주산성은 동절기에는 오후4시, 하절기에는 오후5시면 문을 닫는다. 하지만 덕양정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워낙 멋있고 아름다워 7~9월에는 특별히 오후 10시까지 연장 운영을 한다고 한다.

행주대첩비와 대첩비각은 덕양정의 바로 왼쪽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우선 대첩비각 안에 있는 비석(초건비)은 선조 35년(1602년) 권율 장군이 목숨을 거둔 뒤 산성 전투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비석에는 승전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으나 마모가 심해 현재는 식별이 어렵다. 비석에 새겨진 글은 조선 최고의 문장가였던 최립이 짓고 제일의 명필이었던 한석봉이 썼다고 한다. 비각 바로 옆 정상에 우뚝 솟은 행주대첩비는 15.2m의 석탑으로 이 역시 1970년 재정비사업 때 건립됐다. 앞면에 새겨진 한자(幸州大捷碑)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다. 행주산성의 정기 휴일은 매주 월요일이며 개장 시간은 동절기와 하절기 모두 오전9시다. /글·사진(고양)=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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