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준기(73) 전 동부그룹(현 DB그룹) 회장이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김 전 회장은 소송과 함께 여권 무효화 조치의 집행정지도 신청했지만 법원이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김 전 회장은 이달 말까지 귀국하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 신세를 피할 수 없게 됐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하순께 “여권의 발급제한·반납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윤경아 부장판사)는 이달 9일 첫 기일을 열었다. 김 전 회장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외교부 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도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김 전 회장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비자가 만료되는 이달 말까지 귀국해야 한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여성 비서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김 전 회장은 미국 체류를 이유로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수서경찰서의 출석 요청을 세 차례 거부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김 전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으면서 여권 무효화를 요청하고 인터폴 공조수사도 의뢰했다. 다만 미국 현지 당국이 김 전 회장을 체포해야 할 의무는 없다. 현지 경찰은 김 전 회장의 나이, 건강 상태를 고려해 수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DB그룹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치료는 일반과 다른 임상 단계여서 중간에 멈출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 전 회장은 치료가 끝나고 의료진 허락이 있으면 다음달이라도 바로 귀국해 성실히 조사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간과 심장 등의 질병 치료를 이유로 지난해 7월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추행 피해자가 자신을 고소한 사실이 알려진 뒤인 같은 해 9월21일 동부그룹 회장에서 물러났다.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지난해 2~7월 김 전 회장이 자신의 신체를 강제로 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회장 측은 신체 접촉 사실은 인정하지만 강제성이 없었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피해자가 신체 접촉 사실을 빌미로 거액을 요구했다는 게 김 전 회장의 주장이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