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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더 나은 세상 만드는 '시민의 각성'

■오찬호 지음, 동양북스 펴냄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1987’의 한 장면에서 대학 신입생인 연희는 “군부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시위에 함께 나서자”는 선배의 제안에 이렇게 답한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짐짓 냉소적인 어조로 두려움을 감췄던 연희는 삼촌이 정권으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야 사회의 진보와 개인의 삶이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겁 많던 소녀는 어느새 거리로 뛰쳐나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구호를 목놓아 외친다.

사회학자 오찬호가 지은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가 역설하고자 하는 바 역시 영화 ‘1987’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정치·경제·교육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짚은 사회학적 보고서이자 더불어 잘사는 미래를 함께 도모하자는 제언이다. 저자는 각종 TV 교양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며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인물이다.

영화 ‘1987’이 그려낸 시대로부터 30년이 넘게 흘렀지만 저자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여전히 문제투성이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제가 성장했지만 기업과 가계의 소득 격차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1995년부터 2012년까지 국민총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8.3%포인트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 비중은 6.6%포인트 올랐다. 기업소득 비중의 이 같은 증가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포인트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섯 살 때부터 영어학원에 다니고 취업을 위해서는 성형도 마다하지 않으며 작은 집 한 칸 마련하는 데 청춘을 갖다 바쳐야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의 총체적 모순보다 더 큰 문제는 ‘세상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민들의 냉소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무능력이나 게으름을 탓하며 사회 모순을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라고 꼬집는다.

영화 ‘1987’의 연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은 우리 모두 세상의 부조리함을 자각하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칠 때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안위를 전부 내던지고 세상과 맞서 싸우라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의식을 갖춘 시민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충분하다. 생각의 변화가 모이면 사회의 변화라는 큰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애국의 가장 고귀한 형태”다. 1만4,0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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