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신능력에 대한 논란이 연초부터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올해 예산안만 4조1,000억달러(4,700조 원) 규모에 달해 한국 네티즌으로부터 ‘천조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패권을 자랑하는 미국 대통령의 정신건강이 전 세계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 내 정신건강전문가 70여명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연례 건강검진을 하루 앞둔 10일 대통령 검진 담당의사에 서한을 보내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능력에 대한 진단을 요청했다.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대통령의 건강검진을 맡은 월터리드 군병원의 로니 잭슨 해군 소장에게 서한을 보내 12일(현지시각) 실시될 건강검진에서 대통령의 ‘신경학적 건강에 대한 평가’를 포함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담당의에게 ‘이 환자’(트럼프)와 국가에 대한 책무를 상기하면서 전문의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신경 및 정신의학적 검진을 받게 할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 이상설을 촉발한 것은 지난 5일 출간된 화제의 베스트셀러 ‘화염과 분노’다. 이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등 건강 이상의 낌새를 보였으며 백악관 고위 참모들 역시 트럼프의 정신건강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등장해 논란에 불을 댕겼다. 책의 내용이 화제를 뿌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나는 매우 성공적인 사업가에서 미국 최고 TV 스타까지 됐다”며 “나는 총명할 뿐 아니라 매우 안정된 천재”라고 자신을 반대하는 측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정신이상 시나리오를 들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미 NBC 방송은 “레이건 전 대통령 두 번째 임기 동안 그의 정신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해서 제기돼왔으며, 퇴임 5년 뒤인 1994년 레이건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언론을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강해지자 백악관 참모들의 엄호도 강력해졌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5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대해 결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그는 논쟁을 듣고 직접 반박하기도 한 뒤 마침내 우리가 실행할 결정을 내린다. 그는 모든 주요 정책 영역에서 옳은 결정을 해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굵직굵직한 국제현안과 산적한 내부 문제들을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지도자라고 추켜세운 것이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세계 최고 석유기업인 ‘엑손모빌’의 전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이한 행동을 분석하는 데는 의학학위나 정신분석이 필요하지 않다고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로 트럼프 대통령과 지속해서 대립각을 세워온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데에는 의학 학위나 정신의학적 진단이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트윗을 읽고, 그의 행동이 대통령직이나 국가 및 중요 기관, 글로벌 질서의 통합 등에 미치는 결과를 지켜본 인사들은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의 건강검진과 관련해 서한을 보낸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복합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지 기능’은 통상적인 대통령 건강검진 사항이 아니지만 1946년생 개띠로 한국 나이 73세인 트럼프 대통령의 나이를 고려할 경우 권장사항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복합적 사고 기능쇠퇴와 두서없는 연설 △사고를 마무리하는 능력 결여 △의심스러운 판단과 기획 △문제 해결 △충동 자제 능력 등을 트럼프 대통령의 이상 징후로 꼽았다. 서한에 참여한 공군군의관 출신 정신의학자 스티븐 버서는 공군 재직시절 핵무기를 관장하는 군인들에 대한 정신건강 검진을 맡은 바 있으며 자신의 이러한 경력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 사태가 각별한 우려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의 정신의학자 데이비드 라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양식이 “혼란스럽고 우려스러우며, 진정 주의를 필요로 한다”며 많은 사람이 이렇게 나선 이유와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NYT가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바로 투표였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와 세계에 위험이라고 믿으면 그의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한 행동에 맞서 싸울 의원의 선출을 도울 수 있고, 그것이 실패하면 2020년 대선이 있다”고 투표를 통해 권력을 교체하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