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방송되는 KBS1 ‘다큐공감’에서는 ‘마지막 화전민, 사무곡의 겨울’ 편이 전파를 탄다.
너나 없이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산에 불을 질러 밭을 만든 火田은 그 시대 농부들의 막장이었다. 땅 한 뙈기 못 가진 농부들에게 유일한 터전이었던 화전. 그러나 강원도에만 3만 호 넘게 존재하던 화전민은 1975년의 대대적인 이주정책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단 한 사람을 빼고는.
▲ “네 살에 들어왔어 올해로 여든 네 해인가.. 그럼 내 나이가 몇인지 알겠지? 그나저나 저 감, 마저 따야 되는데..”
태백 준령의 사무곡에서 정상흥 노인을 만났을 때, 노인은 자신과 비슷하게 나이 먹은 감나무와 실랑이 중이었다. 농익은 감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의 키는 어림잡아도 5-6미터. 80평생 농사일로 허리 굽은 노인의 키는 1미터 50이 채 안돼보였다. 3미터짜리 장대를 휘이 휘이 저어도 끝내 닿지 않는 나무 꼭대기. “에이, 까치밥이나 되라!” 하고 집에 돌아온 노인이 다시 장대를 끌고 나선다. 노인은 왜 그렇게 감 따기에 집착하는 걸까.
▲ “오늘이 아버지 제사야. 평생 아버지 그늘에 살았는데 돌아가신 지 40년 넘도록 여기 떠날 엄두가 안나.”
노인은 60년 전에 손수 지은 네 칸짜리 굴피집에 산다. 지게로 물을 긷고 나무 불을 때서 밥을 해먹는데 노인이 갑자기 옷을 훌훌 벗더니 평소 군불 때는 가마솥에 들어앉는다. 아버지 제사라 목욕재계 한다는 것이다. 젊어서 병으로 일찍 죽은 형 대신 노인에게 가장의 짐을 나눠지게 했고 하산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했던 아버지. 노인은, 밭에 아버지 묘소를 두고 아무도 찾지 않는 기일을 혼자 챙긴다. 꼭대기 감을 끝끝내 따려고 한 건, 생전의 아버지가 곶감을 좋아한 때문이었다.
▲ 산중의 벗, 전화와 라디오
수도, 전기가 없는 노인의 집에 유일한 기계는 전화와 라디오다. 날씨 뉴스 들으려고 둔 라디오는 잡음이 심해 알아듣기 힘들고 가끔씩 안부를 묻는 자식들 때문에 둔 전화는 때때로 불통이다. 그래도 없으면 서운하단다. 하긴. 피붙이 가족이 함께 있어도 외로워지는 게 인생 아닌가.
▲ 두 남자의 동상이몽
등산객이 하산길에 노인의 집을 찾았다. 모르는 손님이다. 익숙하게 상을 차려내고 호롱불 켠 방을 내주는 노인. 초로의 등산객은, 기회만 되면 노인처럼 산에 들어와 자유롭게 살고 싶단다. 노인은 몇 달째 불통인 전화 때문에 시내 사는 아들네 안부가 궁금하다. 며칠 뒤, 노인은 결국 농사지은 땅콩을 바리바리 싸들고 삼척 시내로 향하는데.
한 해, 한 해, 늙음을 실감한다는 정상흠 노인. 먼 산 바라보던 노인이 홀로 중얼거린다.
“지난 가을에 단풍색 고왔거든.. 그럼 농사가 잘 돼~ 겨울 참았다 눈 녹으면 밭 갈고 씨 뿌려야지. 여기도 봄에 꽃 피면 예뻐, 천당이 따로 없어.”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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