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중혁(47·사진)은 함부로 우쭐대지 않는 사람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문학상을 받아도 떠들썩한 자화자찬을 늘어놓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책과 영화를 비평하는 팟캐스트와 동영상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지만 부족한 면을 헤집기보다 기특한 점을 칭찬하려 애쓴다.
그런 그가 창작의 비밀을 조곤조곤 일러주는 책을 내놓았다. 제목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 창작 기법을 다룬 보통의 책들과 달리 ‘이렇게 하면 나처럼 쓸 수 있다’ 따위의 호언장담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수줍은 목소리로 짚어주는 이 책은 그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다. 작가 지망생을 위한 책이지만 글쓰기 테크닉보다는 인생을 바라보는 김중혁의 시선이 행간을 가득 메우고 있어 일반인이 읽어도 따스하고 짠한 감정이 차오른다.
새 책 출간을 맞아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중혁은 “디테일한 기술을 알려주는 책들은 이미 많은데 나까지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며 “글쓰기에 있어 정말 중요한 요소는 잡다한 지식과 테크닉이 아니라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가 최고로 꼽는 글쓰기 스승은 저의 어머니입니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고 책도 많이 읽지 않으신 분이지만 어머니가 쓰신 편지나 일기를 보면 굉장한 리듬감이 느껴져요. 어머니의 글을 통해 무작정 공부하고 책만 읽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김중혁은 “에세이든 소설이든 글을 쓰려면 누군가의 심리를 묘사해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다듬는 과정”이라며 “다른 사람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더라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글쓰기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가 지망생들을 향해 다른 사람의 재능을 시기하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찾을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타인이 가진 재능에 대한 시기심으로 망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예술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합니다. 당대에는 박한 평가를 받았지만 훗날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경우도 많잖아요. 남과 비교하기에 앞서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김중혁은 “하루에 본 수만 가지 장면 중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1초짜리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7년째 해오고 있다”며 “세심한 관찰을 통해 ‘기억의 풀밭’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싱싱한 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단에서 김중혁은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할 만큼 그림 솜씨가 출중하고 벌써 7년째 도서 관련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 케이블 채널을 통해 인문학과 예능을 결합한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곧 데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중혁은 생(生)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직업란에 남아 있을 단 하나의 ‘명패’는 소설가이기를 꿈꾼다.
그의 다음 작품은 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소설이다. 자료 조사를 비롯한 기본적인 구상은 거의 끝마친 상태이며 조만간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할 예정이다. 김중혁은 “예전에는 재밌고 특이한 괴작(怪作)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전작인 ‘나는 농담이다’를 거치면서 현실과 좀 더 밀착된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중반 정도에는 작품을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그는 “다른 일을 할 때는 그저 즐겁고 행복한데 소설만 쓰면 무척 고통스럽고 괴롭다”며 “내가 정말 잘하고 싶은 것은 소설이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는 높이까지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벌이는 이유도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소설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사실 작년에는 마치 안식년처럼 소설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대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활시위를 충분히 당겼으니 올해는 열심히 한번 써봐야죠.” (웃음)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