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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다운사이징']12.7㎝로 몸 작아져 부자됐지만 모두 행복한 유토피아는 없었다





생활만 여유로우면 행복할 것 같은가? 아니다. 여유와 행복의 유토피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곳은 우리가 떠나왔던 디스토피아의 또 다른 재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바로 그런 이야기다.

폴(맷 데이먼)은 평생 같은 집에 살면서 10년째 같은 식당을 운영하는 미국의 전형적 서민이다. 대출 조건 때문에 큰 집으로 이사가지 못하는 게 늘 아내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폴 부부는 인간 축소 프로젝트인 다운사이징 기술을 접하게 된다. 인구과잉에 대한 해결책으로 개발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와 사물의 부피는 0.0064%로 축소되고 무게도 2,744분의 1로 줄어들며, 1억 원의 재산은 120억 원의 가치가 돼 평생 부유하게 할 수 있다. 폴과 오드리는 ‘왕처럼’ 살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잠시 망설이지만 현재의 찌든 삶을 벗어나기로 결정한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고 ‘레저랜드’로 향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폴은 ‘다운사이징’ 기술이 창조한 유토피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반전을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깨닫는다. 일단 같이 수술받기로 했던 아내가 막판에 거부하고 도망친 것. 키 178cm에 몸무게 78kg이었던 폴은 12.7cm 키에 몸무게 25g의 소인으로 변하고 아내 없이 홀로 레저랜드로 이주한다. 영화에나 나오는 호화로운 저택에 살게 된 폴의 표정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아내도 없고, 친구도 없기 때문이다. 몸이 작아지고 부자가 된 대신 그 외의 모든 것은 잃었다. 레저랜드에서 새 친구를 사귀면 될 것 같지만 어른이 돼 속터놓는 친구를 만들기란 그리 쉽지 않기에 폴은 늘 외롭다. 그러던 중 레저랜드의 삶에 만족하는 이웃이자 파티광인 두샨(크리스토프 왈츠)의 초대를 받은 폴은 그의 집에서 청소를 하는 베트남 이민자이자 한쪽 다리를 잃은 녹 란 트란을 만나게 된다. 녹 란 트란과의 만남을 통해서 폴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녹 란 트란의 베트남식 영어와 정제되지 않은 단어 선택은 영화의 색다른 코믹 요소로 작동한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고 온 사람들로 인해 세르비아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노르웨이어, 그리스어, 필리핀어, 아랍어, 프랑스어 등을 들을 수 있다.

영화 중반 이후 녹 란 트란의 등장으로 우리는 잊고 있던 계급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모두가 평등하게 부자일 것 같은 레저랜드에도 빈민가와 청소 등 저임금 노동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더 끔찍한 것은 이들이 정부 혹은 권력자에 의해 강제로 다운사이징 수술을 당해 레저랜드의 하층민으로 살아가게 됐다는 사실이다. 유토피아로 보였던 레저랜드에서 조차 누군가의 부유한 삶을 지탱해줄 하위계급이 존재하고 있었고, 나의 풍요롭고 편리하고 안락한 삶은 또다른 누군가의 빈곤의 결과였던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는 영화의 후반부는 씁쓸함과 고통을 남긴다.







한편 연출은 ‘사이드웨이’와 ‘디센던트’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최고의 스토리텔러로 꼽히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맡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8월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토론토국제영화제, 런던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녹 란 트란 역을 맡아 코믹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면의 연기를 선보인 홍 차우는 이달 초 열린 75회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보면 깜짝 놀랄만한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다운사이징 기술이 성공했다는 뉴스가 세계적으로 전파를 탈 때 한국의 강남역과 가락시장이 등장한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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