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모씨는 지난해 가을 초등학생 1학년이던 아들을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다. 성공한 사업가인 김씨는 지난해 초부터 아이의 담임교사로부터 직간접적인 촌지 요구에 시달렸다. 김씨는 “반에서 소위 말해 좀 잘 산다고 알려진 아이 4명의 부모가 동시에 촌지 요구를 받았다”며 “이를 거부한 부모의 자식들은 대놓고 따돌리는 등 괴롭힘이 끊이지 않아 결국 아내와 함께 아이를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김영란법 도입 이후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던 촌지 관행이 강남·송파 등 일부 지역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부 교사들은 직접 촌지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대놓고 차별하는 행위도 일삼는 실정이다.
김씨는 “담임교사가 처음에는 ‘같은 반 학생들과 놀 보드게임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길래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거절했다”며 “알고 보니 돈 봉투를 첨부해 선물을 보내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동료 학부모들과 이야기하고 뒤늦게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김씨에 따르면 촌지를 거절하자 담임교사는 노골적으로 학생들을 괴롭혔다. 김씨는 “촌지를 거절한 부모의 자식들만 교실 맨 뒤에서 혼자 책상에 앉도록 하거나 같은 반 학생들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이니 놀지 말라’고 말하는 등 압박 수위는 갈수록 심해졌다”고 덧붙였다. 결국 물의를 일으킨 해당 교사는 지난해 가을부터 담임교사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당국에서는 그동안 김영란법 도입 등으로 촌지 관행이 근절됐다고 밝혀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9월 김영란법 도입 1주년을 맞이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최근 1년간 촌지나 불법찬조금 신고, 처리 건수는 0건이었다고 발표했다. 학부모와 교직원 역시 각각 83%, 85%가 촌지 관행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반면 약 15% 내외의 응답자들은 촌지 관행이 여전하다고 응답했다. 서울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임을 감안하면 강남·송파 등 강남3구의 촌지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들어 생활기록부 작성이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강남구 등 입시 성적에 예민한 지역의 학부모들일수록 담임교사한테 잘 보여야 할 유인이 커진 것도 촌지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으로 여겨진다. 서울 강남의 한 사립고등학교 교사는 “예전처럼 학교에 선물을 보내는 현상은 사라졌지만 학부모끼리 정보를 공유해 담임교사 집으로 직접 명품 가방이나 지갑 등을 상품권 봉투와 함께 챙겨서 보내는 관행이 남아 있다”며 “고가의 명품까지는 아니라도 작은 선물이라도 집으로 보내려는 학부모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치동에 위치한 한 입시학원 원장 역시 “수시 입시 전형 대비를 위해 학부모들과 상담할 때 담임교사의 생활기록부 작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일단 선물이라도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을 많이 해온다”며 “특히 고위층 자제가 많은 자율형 사립고 등 특목고에서는 남들이 하는데 나만 안 할 수 없다는 학부모 심리가 촌지 관행이 이어지게 만드는 원인인 것 같다”고 전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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