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평범한 취준생입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회사가 있어요. 신입 채용이 이년에 한 번 열리는 곳이었어요.
올해는 채용이 열리는 해였는데 갑작스럽게 뽑는 룰이 바뀌었대요. 앞으로는 신입 공채를 없이고 경력으로 수시채용만 한다고.
통보받았을 때 철렁했어요
오랫동안 준비한 무대가 갑자기 사라진 느낌… 갈 곳을 잃을 느낌
지금 비슷한 감정이 들어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때문이에요.
이미 그들이 단일팀인데 진짜 단일팀을 만들라니요. 그들에게 다음 무대는 없어요.
이 얘기를 한 번만 들어봐 주시겠어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에 안타까워하는 한 취준생의 청원이다.
정부 주도로 남북의 단일팀 구성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선수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이들이 진짜 원하는 올림픽 무대는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의 논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선수들의 목소리를 따라가 본다.
[자막]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울려퍼진 애국가, 대표팀 창설되고 18년만에 처음으로 들은 애국가에요.
우리는 국가대표 외에는 소속이 없는 여자 아이스하키팀입니다. 이 말이 뭐냐고요? 프로팀, 실업팀이 없어요. 국제 대회가 아니면 뛸 수 있는 무대가 없다는 뜻입니다.
빙상스포츠가 대부분 비인기 종목이지만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그중에서도 유독 그렇습니다.
연습 상대가 없어서 중고등학교 남자 아이스하키부와 경기했고요. 국가대표라고 정부에서 받은 건 월 120만원의 훈련비용이 전부입니다. 당연히 생활은 쉽지 않죠. 하루에 몇 시간만 쪼개 일할 수 있는 알바 자리도 일년 이상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랬던 우리가 각자의 일상을 조금은 포기한 채 하나만 보고 매달린 것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될 평창 올림픽 때문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올림픽이요.
미국 명문대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하고도, 국가대표팀에 합류해달라는 이메일에 흔쾌히 한국으로 달려온 은정이
피아니스트라는 화려한 삶보다 빙상장에서 퍽을 날리는 순간이 좋다며 대표팀이 된 수진 언니
어릴 때 미국에 입양된 후 다시 국적을 회복해 한국 대표로 뛰고 싶다는 윤정이
그밖에 다들 자신의 제 밥벌이를 포기한 수많은 친구들
그리고 지금은 코치팀으로 우리 곁에 남은 18년간 국가대표를 한 규선언니까지 저희는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아요, 올림픽을 위해 포기한 것들이 너무도 소중했다는 걸 아니까.
그런 우리에게 진짜 단일팀을 만들라뇨. 우리의 팀웍은 무엇이 되는 건가요.
국무총리는 ‘어차피 메달권도 아닌데’라고 하셨죠. 그분 말처럼 메달권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메달이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바라는 건 단일팀이든 아니든 올림픽만 보고 뛰어온 우리는 모두 한 경기장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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