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청와대의 강압에 따른 것이라는 전경련 관계자의 법정 증언이 나왔다.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은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같이 진술했다. 허 전 행정관은 박근혜 정부가 전경련을 통해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이 전 부회장은 이날 법정에서 2014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청와대가 지정한 특정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검찰이 “단체들로부터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제출받기 전에 특정 단체에 지원 금액을 미리 지원하는 경우가 있느냐”고 묻자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이 전 부회장은 청와대가 지원 대상 단체 명단을 미리 짜 놓고 자금 지원을 요구한 것은 2014년 1월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라며 전경련이 회원사에 불이익이 갈까 봐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증언했다.
이 전 부회장은 당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김기춘) 비서실장이 직접 챙기는 관심사이니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빨리 조치를 취하라”고 독촉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실무를 맡았던 전경련 직원을 두고서 청와대 측은 “실무자가 뻣뻣해서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는 요구까지 했다고 이 전 부회장은 진술했다. 실제로 입사 2년 차였던 해당 직원은 다른 팀으로 전보됐다.
특정 단체를 지원한 이유를 추측케 하는 정황도 일부 공개됐다. 이 전 부회장은 신동철 전 비서관에게서 “최소한 선진화시민행동과 애국단체총협의회는 실장 지시이니 지원하라”는 독촉을 받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두 단체가 대선 때 도움을 줬으니 지원해야 한다는 말도 당시에 들었다고 전했다.
허 전 행정관은 월드피스자유연합이란 단체에 지원금을 더 주라면서 “4대 개혁과 관련해 연합이 할 일이 많다. 다른 데 지원금을 빼서라도 지원해줘라”는 얘기를 했다고 이 전 부회장은 증언했다.
전경련은 이후 2016년 4월 언론이 어버이연합 지원 의혹을 보도하자 청와대가 명단을 제시한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자 허 전 행정관은 당시 전경련 권순범 사회협력팀장에게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에 해당 언론사 앞에서 데모하게 할 테니 곧 무마될 것이다. 대응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전경련은 2016년 7월부터 시대정신 계열 단체들에 자금 지원을 재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아람인턴기자 ram101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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