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 조사의 보완 조사’를 예고했다. 사실상 세 번째 조사의 여지를 남기면서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법원 내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약속한 사법행정 쇄신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김 대법원장은 24일 “추가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접하고 매우 참담한 심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합당한 후속조치를 취할 것이며 조사 결과를 보완하고 공정한 관점에서 조치 방향을 논의해 제시할 기구를 조속히 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관의 동향을 수집하고 주요 재판에 관해 청와대 등과 연락했다는 추가조사위 발표에 이은 메시지다.
세 번째 조사가 이뤄진다면 추가조사위가 조사하지 않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와 암호가 설정된 파일 760여개가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그런 부분은 원칙적으로 (앞으로 구성할) 기구에서 얘기할 내용”이라고 말을 아꼈다.
김 대법원장은 또 “사법행정에 관한 인적 쇄신 조치와 법원행정처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법관 독립을 보장할 중립 기구 설치를 검토하고 법원행정처 대외업무를 전면 재검토하면서 상근 판사도 축소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를 고려한 듯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밝혀졌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도 했다.
이로써 김 대법원장은 블랙리스트 조사를 계속 이어가면서 동시에 사법행정을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첫 조사에서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추가조사위는 법원행정처가 특정 판사의 동향을 수집한 사실은 밝혔지만 이들에 대한 불이익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 PC 내 보안 파일 등을 추가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조사 과정이 불법이었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양측은 각각 검찰 수사도 의뢰했다.
김 대법원장은 다음달 전국 법관 정기 인사에서 법원행정처 인적 쇄신을 단행하며 사법행정 개혁의 물꼬를 틀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상당수 판사들이 블랙리스트 조사에 부정적인 가운데 대법원장이 세 번째 조사 방침을 드러내며 사법부 갈등 봉합은 멀어졌다는 지적이다. 개혁이 반발에 부딪혀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선 법관들은 사법부 내부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검찰이 관여하는 사상 초유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사 결과가 어떻게 되든 법관사회 분열은 심화하고 블랙리스트가 김 대법원장 임기 내내 이슈의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조사 결과를 보면 특정 법관의 동향을 파악하고 재판에 관해 외부와 연락을 취한 것은 분명 잘못됐다”며 “다만 검찰이 개입하면 법원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인 만큼 사안을 매듭짓고 사법개혁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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