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올해 말로 예정됐던 대선을 8개월 앞당겼다. 심각한 경제난과 외부 제재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비판 여론을 조기에 잠재우고 연임하기 위해 사전 작업에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베네수엘라 국영 VTV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친정부 성향의 최고 헌법기관인 제헌의회는 23일(현지시간) 선거당국이 늦어도 오는 4월30일까지 대통령선거를 시행하도록 명령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새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1월부터 6년간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여당인 통합사회주의당 후보로 재선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이날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친정부 집회에 앞서 취재진에게 “통합사회당이 나에게 요청한다면 재선을 위해 출마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제헌의회의 이번 결정은 물가 폭등과 유럽의 경제제재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는 상황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조기 대선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꾀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영국 BBC방송은 “베네수엘라가 지난 수년간 식료품·의약품 등 기초물품 부족에 시달려온 가운데 마두로는 미국과 스페인 등이 사회주의 정부를 전복하려 한다고 강조해왔다”며 “마두로가 선거위원회에 대선 날짜를 가능한 한 일찍 앞당겨 확정하라고 압박해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야당이 마두로 정부로부터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어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야당은 지난해 하반기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해 결집력이 약해진데다 주요 야당 인사의 선거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이다. 민중의지당 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스는 가택 연금돼 있으며 정의제일당 지도자인 엔리케 카프릴레스도 이미 공직 선거 출마가 금지됐다. 제헌의회가 지난해 12월 기초자치단체장선거에 불참한 주요 야당 3곳에 대해 정당으로서 법적 지위를 다시 신청해야 한다는 포고령을 내려 이들 3당의 정당 지위가 박탈될 수도 있다.
마두로가 장기집권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중남미 우파 국가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브라질·아르헨티나·페루·멕시코 등으로 구성된 리마그룹은 이날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회의를 열고 현 상황에서 치르는 대선은 합법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치범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 국무부도 “마두로의 재선 출마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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