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종양내과 진료실에 처음 오는 암 환자를 마주하면 의료진도 긴장을 한다. 환자도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전문적 진료를 받기 위해 내원했기에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향후 암의 경과·치료와 관련한 궁금한 사항들에 대해 속 시원한 얘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진료실의 문을 연다. 이들의 간절한 시선을 느끼면서 진료 기록을 검토하고 진찰도 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의료진도 처음 진료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게 된다.
같은 암이라도 병기(病期)가 다르고 설혹 병기가 같더라도 환자의 증상과 기저 질환들이 다를 수 있다. 환자의 개인적인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의학적인 평가가 끝나면 현재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 암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을 설명하게 되고 환자와 보호자들은 궁금한 사항들을 물어본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질문 중에서 공통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완치가 되는지, 만약 완치가 안 된다면 항암치료를 할 경우 얼마나 살 수 있는지, 항암치료를 하면 오히려 고통만 받는 것은 아닌지,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 입장이라면 항암치료를 받으실 것인지 등이다.
의사는 환자의 예후에 대해 최대한 정확하게 답변하기 위해 병기에 따라 항암치료를 할 경우 몇 퍼센트가 완치되고 중앙생존기간이 몇 개월이고 1년 생존율이 얼마쯤 된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환자는 숫자가 가지는 신뢰성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되나요”라고 다시 물어보기도 한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확률은 50%지만 지금 당장 동전을 2번 던져 모두 앞면이 나올 수도 있다. 의사들이 언급하는 생존율과 생존 기간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참고 사항으로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환자 개인의 미래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할 수는 없기에 임상 연구를 통해 축적된 의학적으로 입증된 항암치료의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항암치료를 권유하게 된다.
그렇지만 항암치료에 대해 가진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치료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암과 연관된 증상이 경미한 경우에는 ‘지금 크게 불편하지 않은데 항암치료를 받으면 오히려 지금보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하고 걱정한다. 암은 의학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점점 커지면서 다른 장기로 전이된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증상이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암이 악화하면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부작용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발생할 상황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종전에 비해 치료 효과가 높아졌으면서도 부작용은 줄어든 새로운 항암제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부작용을 줄여주는 약제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항암치료를 받더라도 이전에 비해 부작용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수월하게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당신이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답변할 때마다 머뭇거리고는 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은 과거의 경험들과 여러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의사가 진료실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무엇보다 의학적 측면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항암치료를 설명한다면 그것이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사에게 궁금한 내용을 문의하고 의사는 환자 입장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설명하고 서로 충분히 상의해 항암치료 방법을 결정해야 치료 효과와 순응도를 높일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