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해 정치권에서 ‘평화’ ‘평양’ ‘평창’의 수식어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올림픽 정신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남북관계의 긴장을 풀고 평화협력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 올림픽이 북한 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제재동력을 약화하고 북한체제 선전장이 된다는 입장, 올림픽과 평화의 연계를 거부하면서 순수스포츠 행사로 치르자는 입장에 따라 지지자들이 동원되고 점차 확증편견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아 ‘강원도 올림픽’의 우려를 불식하고 사상 최대의 선수단이 참여하고 26개 정상급 지도자들이 방문하는 등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특히 오는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마지막 정치적 업적으로 볼 수 있는 베이징올림픽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평창올림픽, 특히 평화올림픽의 가능성을 주목해왔다. 여기에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과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기간 내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일시 중단이라는 승부수를 제시하고 국면을 전환한 것이 한중관계를 선순환시켰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평창의 평화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돼 한반도 상황과 행위자들이 연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평창올림픽이 외부요인에 의해 흔들릴 때마다 적극적으로 한국 정부를 지지해왔고 실제로 외교부 내에 이러한 토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지난해 한중정상회담 계기 ‘홀대론’과는 달리 정상 간 신뢰·정책신뢰가 작용하고 있다. 다만 한중관계의 ‘바닥’을 확인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한중관계가 역사적 가장 좋은 관계에서 역사상 최악의 관계로 급변한 것을 복기하면서 신중한 모드로 접근하고 있다. ‘아이를 출산하면 시간을 두고 섭생과 휴식을 해 산모의 회복을 돕는다’는 동양의 비유를 자주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또한 중국은 평창올림픽 이후의 한반도 상황전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김정은 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 따른 비관론, 북한이 핵 무력 건설의 완성을 선언하고 9월9일 북한 정권수립 70주년까지 국면관리에 나설 것이라는 신중론, ‘올림픽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미국의 강경한 태도, 북한이 올림픽 참여에 따른 ‘정산’을 요구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지형이 크게 출렁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이번 올림픽 개·폐막식에도 중국은 시진핑 주석을 대리한 ‘고위급 대표단’을 보낼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급속한 한중관계의 개선이 한반도 정치지형을 고려할 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도 시진핑 주석의 참석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평창의 ‘평화’올림픽을 동북아의 ‘평화’올림픽으로 확장해 차기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일본과 중국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올림픽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에 대한 토론을 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비핵화·핵동결·평화체제에 대한 정의와 문법이 서로 다르고 전가의 보도와 같은 역진 불가능한 ‘검증’은 얼마나 현실적인지, 북한의 핵보유국에 대한 ‘인정투쟁’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토론은 불가피할 것이다. 일단 비핵화-한미동맹-통일이라는 기존의 문제설정 대신 비핵화-한미동맹-평화의 방식을 선택했다. 문제는 한반도 위기관리와 위기통제를 하는 한편 한미동맹과 비핵화에 대한 해법을 찾는 복잡하고 긴 과정에 접어들었다. 거대이론은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살얼음판을 걷는 자세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길이 없을 때 길을 찾는 것은 결국 지도자의 미래전략과 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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