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로 차기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이례적으로 중도 낙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백악관의 대북 정책은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대하는 자세까지 더욱 강경해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백악관이 ‘매파 개입론자’로 분류되는 차 교수보다 더 센 매파 인물을 새로 골라 한국으로 보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북 문제를 평화적·외교적으로 풀어나가려는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워싱턴의 분위기를 직접 접한 복수의 소식통들은 백악관 강경파들의 거센 대북 압박 기류가 차 교수의 입지를 약화시켰을 것으로 분석했다. 강경파들은 북한 선제타격론까지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차 교수는 우려를 나타내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도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과 차 교수의 한반도 정책 온도차가 낙마 배경이라고 지목했다. WP는 “차 교수가 지난해 12월 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개인적인 이견을 표명한 뒤 지명될 것으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차 교수가 광범위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북한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제한적 타격을 가하는 방안, 즉 ‘코피 전략(blood nose)’으로 알려진 위험한 개념을 놓고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리들에게 우려를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WP는 트럼프 정부의 한미 FTA 폐기 위협 전략에 대해서도 차 교수가 반대했다고 전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 등 일각에선 차 교수 부부의 한국 사업 등 개인 신상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고 지목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차 교수 낙마 소식이 전해진 30일(현지시간) 공교롭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연두교서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 정책과 ‘아메리카 퍼스트’ 무역 정책에 재차 방점을 찍으면서 강경파들에게 차 교수가 밀렸다는 분석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미국의 주한 대사 인사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확인해줄 사안은 없고 미국 정부가 설명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역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하지만 백악관 안팎에서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주한 미국대사 공석이 장기화하는 데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는 역력하다. 주한 미국대사 자리는 지난해 1월 마크 리퍼트 전 대사가 이임한 후 1년 이상 마크 내퍼 대리대사 체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최우선 동맹인데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북미대화 등을 기대하고 있어 올림픽 개최 이전 주한 미국대사의 부임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추가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뉴욕=손철특파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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