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지난 1월19일 군 구조를 공세적이고 정예화된 형태로 바꾸기 위해 현재 61만명인 병력을 오는 2022년까지 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병력은 육군 위주로 줄여 육군 기준 21개월인 복무 기간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18개월로 줄일 계획이다. 병력 감축 및 복무 단축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3월에 공개된다. 단축 찬성 측은 복무 기간이 준다고 당장 전력 공백이 생긴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현대전에 맞게 군 편제를 재편하는 데도 복무 단축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병력 수뿐 아니라 병사의 숙련도를 높이는 데 큰 문제가 발생하며 부사관 확충, 예산 등 현실적 장벽이 놓인 상황에서 복무 단축이 전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우리 군은 창군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던 시기에 우리 안보는 자신감이 있었다. 눈부신 경제발전에 기초해 충분한 예산과 기술로 최첨단 무기체계를 만들어냈다. 반면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33만명의 아사자를 낸 북한은 간신히 국가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 군은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을 인수했고 전시작전통제권까지도 가져오고자 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꺼내 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북한군은 128만명의 병력을 보유해 수적 우위만이 유일한 경쟁력이었지만 이제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우리 군은 질적 우위까지 위협받게 됐다. 수소탄은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한 북핵 능력에 대응해 한국형 3축 체제를 갖추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됐다. 이런 와중에 탄핵정국 이후 2017년 새 정부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국방개혁을 안보 분야의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우리 국방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 정책이 바로 복무 기간 단축이다. 사실 복무 기간을 단축하자는 논의는 현 정부만이 추진하던 것은 아니었다. 1955년 이후 36개월로 정해진 육군 의무병 복무 기간은 1977년 33개월, 1981년에는 30개월로 줄어들었다가 1992년 26개월, 2003년에는 24개월로 정해졌다. 한편 참여정부에서 ‘국방개혁 2020’이 추진되면서 중요한 사실이 강조됐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듦에 따라 2023년 즈음해서는 병력을 10만명 이상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무기체계를 현대화하고 부사관과 여군 인력을 확충함으로써 병력 감소를 대비하겠다는 방안도 나왔다. 여기에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감축하자는 방안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안보상황이 악화되자 복무 기간 단축은 21개월에서 멈춰 섰다. 2012년 대선에서는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18개월로 복무 단축을 공약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집권하고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안보가 불안해지자 박근혜 정부는 복무 기간 단축 공약을 슬그머니 접었다.
의무병 복무 기간은 우리의 안보상황과 직결돼 있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복무 기간은 우리의 전력과도 직결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복무 기간을 3개월 줄이면 5만5,000여명의 병력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고 한다. 약 5개 사단 병력이 사라지는 셈이다. 좀 더 손쉽게 설명하자면 비무장지대(DMZ)를 지키고 있는 전력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사라지는 셈이다.
또한 복무 기간이 줄어들면 병사의 숙련도도 문제가 된다. 과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병이 숙련도를 갖추기까지는 16개월의 기간이, 전차병처럼 전문성이 요구되는 인력은 21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18개월로 줄어들면 그야말로 쓸 만해질 만하면 전역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숙련 되기도 전에 제대하게 되는데 문제는 비상시에 예비군으로 동원되더라도 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사병을 줄이고 부사관 비율을 늘려 점차 직업군인화하면서 부족한 전력은 첨단화로 공백을 메우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국방개혁 결과는 참담하다. 병력은 줄었으되 과연 1개 소대의 전투력이 10년 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또한 부사관 확충도 문제다. 대개 늘어나는 부사관은 4년짜리 단기부사관으로 사회로 치면 비정규직 성격에 가깝다. 현재도 단기부사관의 장기 전환이 매우 어려운 상황인데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지 않고서는 부사관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예산이다. 병력을 줄이는 만큼 예산은 더 들어간다. 물론 현 정부는 국방예산을 9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리면서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예산들은 북핵 대응 전략무기 구매에 투입되거나 장병들의 봉급 인상 등에 소요됐지 전반적인 전력 강화에 투입되지는 못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꾸는 것이 맞다. 젊은이들의 병역 의무를 조금이라도 더 덜어줘 어려운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국가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애초에 국가라는 틀이 유지돼야 젊은이들에게도 미래가 있다. 복무 기간은 적 위협의 크기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지 정무적 판단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복무 기간을 줄여야만 한다면 정확한 예산과 일정을 제시하면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북한의 위협 앞에 스스로 분열하는 모양밖에는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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