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자 김상열(사진) 회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호남 지역 기반 건설사가 대우건설이라는 대어를 낚으면서 단숨에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로 우뚝 올라섰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우선협상 대상자로 확정 발표된 후 “대우건설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호반건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우건설은 아직 저평가돼 있다”면서 “대우건설의 기존 경영 방향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호반건설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과 호반건설은 2월에 양해각서(MOU) 체결과 실사를 거쳐 여름에 매각 과정을 마무리한다.
김 회장이 대우건설 인수 확정 후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조직 안정이다. 김 회장은 이번 인수를 진행하면서 고용 승계, 임금수준 등에 대해서 대우에 우호적인 조건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 직원들이 최대한 동요하지 않도록 인수절차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대우건설과 호반건설의 급격한 통합을 지양하고 양사가 동반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김 회장은 특히 주택사업 부문과 관련해 대우건설과 호반건설 브랜드를 통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김 회장은 “대우건설의 주택 브랜드인 ‘푸르지오’와 ‘써밋’, 호반건설의 ‘베르디움’을 합치거나 없애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인수한 기업에 대해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모든 계열사가 각각의 경쟁력을 갖는 체제를 갖출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호반건설은 지난 2016년 매출 1,000억원대의 울트라건설을 인수했는데 호반건설산업으로 편입된 후 울트라건설은 과거 토목 전문 건설사에서 주택 사업 시행·시공사로 거듭났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의 인수합병(M&A) DNA는 남다르다”며 “일각에서는 대우건설 인수에 대해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우려를 표출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번 인수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1961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건설업계에서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꼽힌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6년 만에 졸업하고 조선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광주 지역 건설사인 광명주택과 라인건설 등에서 일하며 건설업에 본격 눈을 떴고 28세인 1989년 자본금 1억원, 직원 5명을 두고 호반건설을 창업했다. 이후 연립주택을 지으며 종잣돈을 마련해 아파트 사업에 진출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그의 성공 비결은 남들보다 한발 더 앞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덕분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광주시 삼각동 채소밭에 첫 아파트를 지으며 건설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 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워졌을 때 다른 건설사들은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알짜 용지를 대거 내다 팔았지만 김 회장은 반대로 그 땅을 저렴한 가격에 꾸준히 매입했다. 남다른 선구안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우건설 인수도 이러한 남다른 혜안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김 회장은 “호반건설은 아파트 공급 위주로 사업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 파이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며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대우건설 인수에 나섰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는 전자나 자동차 부품사업은 물론 금융업 등 사업 다각화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호반건설에는 대우건설 인수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권 출신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