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얼굴이 합성된 사진을 들고 경찰서에 갔더니 ‘다른 팀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경찰 맞나요?”
지난해 11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군 게시글이다. 몰카 영상과 사진 피해자가 경찰서에서 겪은 일이다. 당시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 트위터에는 이와 관련된 글이 20만건 이상 올라왔고 경찰청 앞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3개월이 흐른 지난달 경찰이 ‘쇄신’을 외치며 특단의 카드를 꺼냈다. ‘사이버 성폭력 전담 수사팀’을 발족한 것이다. 이 팀은 유나겸(38) 팀장을 비롯해 조승노(46)·남궁선(41) 등 6명의 수사관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경찰의 업무 칸막이 사이에 빠져 갈 길을 잃었던 사이버 성폭력범죄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이버 성폭력범죄는 최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몰카 영상이 인터넷 음란물로 유통되고 오프라인으로 찍은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기도 한다. 범죄 외형은 사이버범죄인데 내용은 성폭력범죄인 사례가 허다한데 경찰이 업무 칸막이에 막혀 수사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지난달 한 대학교 남학생이 동기 16명의 사진을 나체 사진과 합성했다가 적발됐지만 사진을 유포했다는 증거가 없어 적용된 혐의는 ‘음화제조’에 불과했다. 또 지난해 한 여성은 자신의 셀카 사진과 수영복 사진이 합성된 이미지를 인근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신고했지만 “전통적 기준의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 돌아서야만 했다. 셀카 사진은 본인이 촬영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까다롭다.
이렇게 복잡한 사이버 성폭력범죄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경찰의 관할 부서가 음란물은 사이버수사대, 몰래 카메라 범죄는 여성청소년과로 분리돼 있다 보니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유 팀장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무 자르듯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최대한 도움 받을 수 있게 경찰 내 칸막이를 없애 사이버와 성을 동시에 다루는 팀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에 본사를 두고 SNS를 통해 음란물이 빠르게 유통되고 있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수사가 요구된다. 피해자가 자신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유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이미 수백 곳에 사진이 뿌려진 후가 대부분이다. 실제 인터넷 기반 여성시민단체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은 지난해 트위터 지인능욕 계정 300여개를 적발해 시정을 요청했지만 조치가 이뤄지기까지 2~3주가 소요됐다. 조승노 사이버수사 전담 수사관은 “그나마 미국에 본사를 둔 SNS는 경찰청과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이 수사 공조를 하기로 해 종종 협조를 하지만 음란물로 수입을 올리는 사이트들은 아예 영장에 답을 안 한다”며 “여러 경로로 회유하고 증거를 잡아야만 겨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서울경찰청이 사이버 성폭력 전담팀을 출범한 이유는 이처럼 복잡하고 빠르게 진화하는 사이버 성폭력 범죄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팀에 배치된 젊은 수사관 6명의 평균 사이버수사대 수사 경력은 3년 이상이다. SNS 트렌드에 익숙한데다 지인 능욕사진 추적과 해외에 서버를 둔 성인음란물 사이트 폐쇄 등과 관련해 다양한 노하우를 이미 축적한 베테랑들이다.
지난해 ‘소라넷’ 운영진 검거에 참여했던 조 수사관은 “세계 공통 불법인 아동음란물을 찾아내면 해당 국가 수사기관까지 나서서 협조해주는 경우가 많다”며 “10년을 수사하고도 소라넷 운영진 검거에 번번이 실패했지만 한 달 동안 아동음란물만 뒤진 끝에 해외 수사기관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영상 속 아이가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입증하려고 국과수에 음란물 감정까지 보냈다”고 귀띔했다.
사이버 성폭력 전담팀은 경험과 노하우를 앞으로의 수사에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유 팀장이 지난 2016년부터 구축에 참여한 ‘아동 음란물 모니터링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시스템은 키워드 위주로 아동 음란물을 추적한다. 수작업으로 사이트를 뒤지는 대신 성 구매자들끼리의 은어를 키워드로 검색한 뒤 접속 IP와 위치를 연속추적하는 방식이다. 유 팀장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최근 아동 음란물 키워드가 ‘초딩’ ‘롤리’ ‘페도’ 등으로 다양해지는 추세”라며 “젊은 수사관들인 만큼 사이버 성폭력 수사 분야에서는 얼리어답터가 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범죄 트렌드에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이버 성폭력 전담팀의 또 다른 목표는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들이 찾는 첫 번째 창구가 되는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수사에 접근하고 수사 과정에서 추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할 계획이다. 또 필요하다면 여성청소년과와 협업하거나 민간 시민단체 활동가와도 공조할 방침이다. 강력계 10년 차인 남궁선 수사관은 “상처받아 경찰서에 온 여성들이 경찰 내 부서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피해 상황을 반복해 설명하지 않도록 애쓰겠다”고 밝혔다. 유 팀장은 “대한민국 여성들 대부분이 어머니·할머니 할 것 없이 성희롱 경험이 있지 않느냐”며 “그런 마음을 아는 여성으로서 상처는 제대로 봉합하고 수사는 빠르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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