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다보스포럼이 폐막한 지 열흘이 흘렀다. ‘분열된 세계에서 공유할 미래 만들기’라는 주제는 평이한 담론임에도 오늘날 지구촌의 실상을 포괄하기에 주목받는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가 분열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더 나은 자본주의로 공동의 번영과 포용적 성장을 누리자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성장과 변화·혁신을 성찰해본다. 혁신을 바라보는 초점은 시장에 맞춰져 있지만 공급과 수요 어느 측면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시각이 사뭇 다르다. 혁신경제를 비평하는 논객들의 키워드는 세 가지 위협 요인으로 정리된다.
첫째, 위기는 상존하기에 거안사위(居安思危)를 넘어 거위사안(居危思安)의 자세로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한다는 견해다. 위기는 외부의 위협이나 내부의 갈등에서 온다. 미리 감지할 수도 있지만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한다. 오늘날 같은 복잡계에서 위험 요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예측하지 않으면 위기 발발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단순한 예측에 그치지 않고 위기 수준에 따라 낙관적·보편적·비관적 시나리오를 스토리로 엮고 그에 상응하는 정책을 수립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막연한 불안감에서 이어지는 공론화보다 시나리오형 정책 설득이 먼저 이뤄져야 실효성이 확보되는 법이다.
둘째, 산업 경제적 측면에서의 산업화 시대와 디지털 시대 간 격차다. 서로 다른 양 시대를 살아온 40대 이후와 2030세대의 판단 준거와 가치관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득권과 사회초년생들이 각종 이해관계를 두고 다투는 와중에 디지털 격차도 변수로 등장한다. 이른바 ‘디지털 리터러시’를 유지하는 평생교육이 필요한 까닭이다. 사회 시스템 역시 두 시대의 것이 혼재돼 불신과 갈등의 씨앗이 된다. 각종 재난과 안전사고도 기존의 시스템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분열과 격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셋째, 사회 문화적 시각에서는 실물세계와 가상세계의 불균형과 부조화다.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이 기존의 주력산업들과 융합 혹은 대체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불균형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문제는 시장이 왜곡되거나 불신을 받게 되면 저항감이 싹튼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이 더 나은 보안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신과 탐욕을 먼저 만날 때 가상화폐 신드롬이 탄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세 가지 위험 요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뢰’다. 성장의 한계와 시스템의 한계를 야기하는 핵심 요인이 바로 신뢰의 부재인 것이다. 정책은 현실을 바로 반영하지 못하고 시장보다 늦게 움직인다. 정치 구조에 따라 정책 기조가 바뀌고 정책 실패의 구실을 과거에서 찾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정책에 대한 신뢰가 쌓이기 어렵다. 시장 만능주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입각해 시장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 또한 실효성을 잃거나 실패한 사례가 많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교훈에 맞서려는 것이야말로 다름 아닌 오만임을 정치의 계절에 앞서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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