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결과가 5일 나온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오후2시 이 부회장과 삼성 전직 임원 4명의 2심 결과를 선고한다. 지난해 8월 말 1심 선고가 난 후 5개월여 만이다. 이번 항소심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을 인정할지 여부다. 또 이른바 ‘0차 독대’ 사실 및 예비적 혐의를 추가 적용한 특검의 잦은 공소장 변경과 재산국외도피액 인정에 따른 형량 변화 등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묵시적 청탁’에 대한 항소심 판단은=‘묵시적 청탁’의 인정 여부는 이번 항소심에서도 뇌물죄의 유무죄를 가를 핵심 쟁점이다. 명시적 청탁이 오가지 않았더라도 ‘경영권 승계’라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돈을 주고받았다면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게 1심의 판단이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묵시적 청탁 인정은 죄형법정주의·증거재판주의에 위배된다”며 “경영권 승계는 특검이 만든 가공의 틀”이라 맞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로 지분을 충분히 확보한 총수인데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에 어떤 은밀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앞서 특검은 두 차례에 걸쳐 삼성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압수수색했지만 승계 작업과 관련한 문건은 확보하지 못했다. 2심 재판부가 특검 주장처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까지 인정할지, 아니면 삼성의 주장처럼 승계 현안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지 관심이 쏠린다.
◇‘0차 독대’ 등 공소장 변경 영향은=특검은 지난해 12월27일 열린 이 부회장 항소심 결심공판까지 공소장 내용을 네 차례 바꿨다. 2014년 9월12일께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났다는 ‘0차(추가) 독대’가 대표적인 변경 사항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기존 확인된 세 차례 독대 전에 청와대 안가에서 한 번 더 만났고 그 자리에서 삼성 현안관 관련한 부정청탁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부회장은 “0차 독대가 있었는데 기억 안 나면 내가 치매”라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특검은 또 공소장 변경을 통해 단순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한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에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예비적으로 추가했다. 단순뇌물죄는 돈이 오갔다는 사실 자체만 입증하면 되지만 제3자 뇌물죄는 제3자에게 돈을 주면서 부정 청탁을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변호인은 “직무 관련 청탁이 없어 제3자 뇌물죄 성립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안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공모공동정범’으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최씨가 받은 돈을 박 전 대통령이 수수한 것으로 판단해 공동정범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리적 이견이 많은 상황이다.
◇재산국외도피액 인정 따라 형량 갈릴 듯=이 부회장의 형량에 큰 영향을 미칠 부분은 재산국외도피 액수가 얼마나 인정되는지다. 재산국외도피는 통상 징역 3~5년의 단순뇌물 공여보다 형량이 높기 때문이다. 재산국외도피의 경우 50억원이 넘으면 최하 징역 10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애초 특검팀은 삼성이 승마 지원을 위해 독일 내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 명의 하나은행 계좌에 예치한 78억9,430만원 전부를 도피금액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코어스포츠 명의 계좌로 보낸 약 37억원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고 삼성전자 명의 계좌에 예치한 42억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특검은 나머지 42억원도 재산국외도피액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소심에서 42억원까지 도피 금액으로 인정할 경우 이 부회장의 형량은 더 높아진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핵심(뇌물공여)이 아닌 부수적 공소사실(재산국외도피)로 죄책을 평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