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방남 예술단의 이동 수단 및 숙식 장소로 이용할 만경봉92호가 6일 오후 5시 동해 묵호항을 통해 들어온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5·24조치를 통해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 및 입항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동해 항로 이동 및 입항’이라는 곤혹스러운 카드를 들이민 것이다. 통일부는 5일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만경봉92호의 입항을 5·24조치의 예외로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마식령 전세기로 미국의 독자 제재에 ‘예외’라는 구멍을 낸 데 이어 이번에는 선박을 앞세워 우리 독자 제재까지 흔드는 등 올림픽 참가를 명분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이완, 한미공조 균열 내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은 지난 4일 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예술단 본진이 6일 만경봉92호를 이용해 방남하고 예술단의 숙식 장소로 이용할 예정임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만경봉92호는 1992년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80번째 생일 기념으로 취항한 9,700톤급 대형 화물여객선이다. 국내에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응원단을 태우고 온 바 있다.
문제는 부산아시안게임 때와 달리 현재는 5·24조치에 따라 북한 선박의 국내 입항 및 우리 측 해역 운항이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올 들어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남북교류가 급진전하는 가운데서도 북한과의 인적 교류가 제재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경의선 육로나 판문점 통과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바람은 지난달 31일 마식령 스키장 공동훈련 과정에서 방북 수단으로 전세기가 동원되면서 깨져버렸다. 미국이 북한에 들어갔던 비행기에 대해 180일간 미국 입항을 금지하는 독자 대북 제재를 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요청에 미국이 마식령 전세기를 ‘예외’로 인정해준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특수상황이기는 하지만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은 선례가 생긴 것이다. 일각에서는 마식령 전세기가 미국 대북 강경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만경봉92호가 강원도로 들어오면 이번에는 바닷길 제재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백 대변인은 “우리 대북 제재 5·24조치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입항을 금지하고 있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5·24조치의 예외조치로 검토했다”며 “2013년에도 나진-하산 물류사업을 국익 차원에서 5·24조치의 예외사업으로 인정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만경봉92호 입항 후에도 추가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선박에 정유제품이 공급되거나 예술단의 숙식을 위해 식료품 등이 지원될 경우 품목 제한 관련 복잡한 국제사회 제재 기준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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