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한 아기를 여행용 가방에 방치한 채로 친구를 만나러 간 미혼모가 경찰에 적발됐다. 하지만 ‘아기가 숨진 상태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는 부검 결과에 따라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6일 경기 수원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7시께 A(19·여)씨가 아기 시신을 담은 여행용 가방을 끌고 한 파출소 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설득으로 경찰을 찾아왔다는 그는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그는 당일 오전 6시께 자신의 집에서 이미 숨진 여아를 낳았다고 했다. 아기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놓은 채 잠을 잔 뒤 오후에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사이 딸의 방을 청소하던 아버지가 가방에 든 아기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도록 A씨를 설득했다.
지난해 하반기 간이 검사기로 임신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산부인과에는 가지 않았다. 경찰로부터 시신 부검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5일 “아기는 6∼7개월 된 상태이며, 사산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이 소견에 따라 A씨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 숨진 아기는 법적으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여서 사체유기죄도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만개시설을 통설로 하고 있는 우리 형법과 판례에선 산모가 진통을 호소해 분만이 시작될 때부터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본다. 복중 태아를 고의로 숨지게 하는 ‘낙태’를 살인이 아닌 ‘낙태죄’로 정해 별도로 처벌하는 것도 낙태의 대상이 아직 사람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따라서 A씨의 아기가 이미 뱃속에서 숨진 채 태어났기 때문에 이 시신을 방치했다고 해서 사체유기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이 여성을 처벌할 근거가 없어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환 인턴기자 juj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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