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인프라 투자 구체안과 예산교서를 마침내 발표했다. 하지만 4조4,070억달러의 2019회계연도(2018년 10월~2019년 9월) 예산안 요청과 사실상 민간 투자에 의지해야 하는 인프라 개선안은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논란만을 고조시키고 있다. 국방예산을 대폭 늘리는 대신 복지비를 축소해 재정균형을 도모하고 그나마 재정균형 회복시기도 종전보다 10년 더 늦춰질 것이라는 청사진이 공개되자 ‘트럼프발 위기’만 더 커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미 행정부는 국방예산을 7,160억달러로 지난 2017년보다 13% 대폭 확대하고 외교·환경 등 비국방예산은 4,870억달러로 크게 줄인 내용을 골자로 한 4조4,070억달러의 2019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예산안에서 행정부의 증액 요청이 두드러진 분야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과 닿아 있는 국방부와 국토안보부·상무부다. 군비 현대화와 해외 긴급 전시작전 비용 등을 포함한 국방 예산이 13%나 올랐고 국토안보부 예산도 국경장벽 건설 비용으로 2년간 180억달러를 배정하며 8% 늘었다. 상무부 예산 역시 공정무역 추진 예산 증액으로 6% 증가했다. 반면 국무부 예산이 26%나 줄면서 외교 부문의 힘 빠지기가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농림(16%), 교육(10%), 환경보호청(EPA.34%) 등 대부분 부처의 예산이 큰 폭으로 줄게 됐다. 외교·원조 비용인 국무부 예산을 대폭 줄인 대신 해외 교전비용(긴급 해외 군사작전 경비·890억달러)을 내년도 국방비 예산에 대규모로 책정한 데 대해 워싱턴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대통령은 예산교서와 함께 55쪽 분량의 상세 인프라 투자안도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는 1조5,000억달러로 예정한 인프라 개선을 위해 향후 10년간 총 2,000억달러를 투입한다. 이를 ‘마중물’로 1조3,000억달러의 자치정부 및 민간 투자를 일으켜 항공·항만·철도·도로·인터넷망·음용수·에너지 등 노후한 인프라를 개선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정부 자금 2,000억달러로 1조3,000억달러의 지방정부 및 민간 투자를 일으키겠다는 것은 현실성을 논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이번 예산안으로 내년 미 재정적자는 9,840억달러(약 1,064조원)에 달하며 전문가들의 관측대로 1조달러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된다.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법인세 인하정책으로 세입 증가가 2%에 그쳐 세출을 압박해야 했지만 국방비·무역장벽 등 주요 행정부 정책 이행도 고집하면서 세출이 5%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국내총생산 (GDP) 대비 재정적자는 4.7%에 달해 2012년(6.8%) 이래 최고로 악화된다. 이에 대해 트럼프 정부는 비국방예산 축소를 중심으로 향후 10년간 재정적자를 3조달러 줄여 오는 2028년까지 GDP 대비 재정적자를 1.1%로 낮추고 연방부채 비율도 73%로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향후 10년 동안 세입증대보다 생활보호·노인의료·학자금 등 사회보장 혜택(세출) 축소를 중심으로 재정균형을 도모한다는 구상이 실현되면 서민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FT는 특히 백악관이 이번 예산안을 통해 2028년까지 정부 재정적자를 해결하겠다던 공약을 사실상 폐기하게 된 데 주목했다. 예산교서에 따르면 법인세 인하와 각종 공약 이행 비용이 더해지면서 정부 적자가 해소되는 시점은 2039회계연도로 종전 계획보다 10년 더 연장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10년물 금리 평균을 2.6%, 내년 평균을 3.1%로 전망해 현 수준(2.9%) 및 내년 시장 전망(3.5%)과 다소 동떨어진다는 지적도 받았다. WSJ는 “인프라 투자와 법인세 감면 등 정부 정책에 따라 재정적자가 심화하고 경기과열을 부추길 위험성이 여전하다”며 “현재 이런 재정부양책이 절실한 시기인지 묻는다면 누구도 그렇다고 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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