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신경만 좋던 평범한 고교생에서 6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윤성빈(24·강원도청). 그는 지난달 휴대폰의 메신저 배경화면 글귀를 ‘My way(마이 웨이)’로 바꿨다. 그리고 딱 한 달 뒤인 지난 16일 윤성빈은 평창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엎드려 타는 썰매)에서 이 종목 올림픽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금메달로 황제 등극을 세계에 알렸다.
전까지 배경화면에는 ‘The best or nothing(최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이라고 쓰여 있었다. 확신에 찬 듯 ‘마이 웨이’를 선언한 것은 지난달 6일 이후다. 당시 윤성빈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독일 알텐베르크 트랙에서 노로바이러스 감염으로 고생하는 가운데서도 우승했다. 그는 올림픽 정복 하루 뒤인 17일에는 시상대에 올라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자신의 사진을 함께 올려놓았다. 스스로 택한 길에 대한 굳건한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왔듯 다음 목표까지도 흔들림 없이 전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윤성빈은 “썰매 종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트랙을 보유했느냐 못 했느냐다. 그런데 올림픽 덕분에 우리는 공인 트랙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며 “앞으로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충분히 준비한 뒤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됐다. 이런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채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의 설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평창 트랙은 일본 나가노 트랙에 이은 아시아 ‘2호’ 공인 트랙이다. 윤성빈은 “이번 올림픽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은 당연히 없다. 4년 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나 말고 우리나라의 다른 선수와도 시상대에 올라 애국가를 같이 듣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윤성빈의 1~4차 시기 합계 기록 3분20초55는 전체 30명 중 단연 도드라져 보였다. ‘러시아 출신 선수(OAR)’인 2위 니키타 트레구보프와는 1.63초 차. 레이스마다 100분의1초를 다투는 스켈레톤에서 올림픽 1·2위 간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없었다. 종전의 최대 격차는 1948년 생모리츠올림픽의 1.4초. 당시는 6차 시기 합계로 순위를 가렸다. 경기 방식이 여전히 6차 시기까지였다면 윤성빈은 2위를 훨씬 더 멀찍이 따돌렸을 것이다. 윤성빈의 기록은 1차 50초28, 2차 50초07, 3차 50초18, 4차 50초02. 세 차례 트랙 신기록을 세웠고 탈 때마다 2위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기만 했다. “황금 개가 되겠다”고 약속한 개띠 윤성빈은 설날에 금메달을 확정하고는 관중석을 향해 세배를 올렸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아이언맨’ 윤성빈이 스켈레톤 황제로 왕위에 앉았다”고 했고 캐나다 글로브앤메일은 “아이언맨으로 불리던 윤성빈은 시속 125㎞의 질주로 황제의 칭호를 얻게 됐다. 스케이팅(스피드·쇼트트랙·피겨) 외의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온 것은 한국의 동계올림픽 참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윤성빈은 올림픽 썰매 종목(스켈레톤·봅슬레이·루지)에서 아시아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윤성빈이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아이언맨을 떠오르게 하는 붉은 수트를 입고는 아이언맨의 동작으로 광속 질주하는 모습에 이처럼 흥미를 보이고 있다. 영화 ‘아이언맨’을 좋아해 그렇게 개성을 표현해온 것인데 윤성빈은 정말 슈퍼히어로처럼 유럽과 북미의 높은 벽을 가볍게 깨뜨렸다. 영화 ‘아이언맨’ 1·2편의 감독 존 패브로는 소셜미디어에 윤성빈의 사진을 올리며 ‘얼음을 타는 아이언맨!’이라고 적었다.
얼음 위의 아이언맨은 올림픽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한 만큼 당분간은 얼음을 떠나 있을 계획이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총감독은 “(윤)성빈이는 그동안 대회나 훈련을 위해 방문했지만 즐기지는 못했던 외국의 좋은 곳들을 올림픽이 끝나면 순수하게 관광 목적으로 팀원들과 함께 가보고 싶다고 했다. 투어 일정을 짜 돌아보는 기분 좋은 계획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창=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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