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러 집을 나서려다 목청을 높였다.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가는 큰아들 녀석이 술 마시고 새벽녘에 들어와 자고 있다. 늙은 아비는 아침부터 일하러 나가는데 방문까지 열어놓고 자는 모습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변호사 아빠 아니랄까 봐 “초중등교육법상 고교는 3년 만에 마치게 돼 있다. 법에도 없는 재수까지 시켜 4년이나 가르쳤는데 미안하지도 않냐. 내가 다시 태어나면 너처럼 팔자 좋은 녀석으로 태어나고 싶다”며 한껏 쏘아붙이고 나왔다.
점심때쯤 문자가 왔다. 아빠가 평소에 ‘상속은 없다, 성인이 됐으니 대학 등록금부터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도 강조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입학하면 학기 초는 바쁠 것 같아 잠시 그만두느라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 한잔했다고 한다. 괜스레 가슴이 짠하다.
정말 자식은 ‘웬수’ 같은 존재일까. 아들 둘을 낳아 양육한 경험에 비춰볼 때 아이들이 없는 삶보다 함께하는 삶이 더 행복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최근 고령화와 더불어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취업·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와 더불어 ‘비혼주의’라는 말까지 나왔다.
출산 가능한 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 수를 합계출산율이라고 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 2016년 1.17명, 2017년 약 1.26명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인 것은 물론 세계 224개국 중에서도 220위에 해당할 정도다.
저출산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산술적 문제가 아니다. 경제활동인구 감소, 주거 문제, 교육 인프라의 과잉 공급, 일자리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심화 등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정부는 2005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현재까지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달 1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방안’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는 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뚜렷한 정책 방향성 확립과 구체적인 제도 정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출산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청년취업률을 높여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줘야 한다. 무상교육 확대로 경제적 부담도 덜어줘야 한다. 임신과 출산·육아에 들어가는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고 영유아 보육시설 확대로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쑥스러워 사랑한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해도 결코 ‘웬수’ 같지는 않은 아들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건강이 최고다.” 이렇게 부모가 되고 늙어가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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