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호무역 불똥이 유럽으로 튈 것을 대비해 유럽연합(EU)이 구체적인 대응카드 마련에 착수했다. 미국에 커다란 타격이 될 만한 품목들을 콕 집어내며 오는 4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폭탄을 매길 경우 보복의 화살이 미국으로 향할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트럼프발(發) 보호무역이 미중을 넘어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20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따르면 EU는 미국의 알루미늄·철강 수입 규제에 대비해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는 미국산 제품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보복관세 대상 품목으로는 토마토·감자·오렌지주스 등 농산품과 식료품이 주로 올랐지만 테네시·켄터키산 버번위스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처럼 특정 지역 상품이나 구체적인 회사 제품도 포함됐다. FAZ는 EU 당국자를 인용해 “EU 회원국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까운 시일 내에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U는 또 이날부터 미국산 연료용 에탄올에 9.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온 조치에 대한 일몰재심(expiry review)에 돌입, 조사가 끝날 때까지 15개월간 과세 기간을 연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에탄올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는 지난 2013년 2월23일부터 적용돼 23일 만료 예정이었다.
EU의 이 같은 움직임은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철강·알루미늄 수입제한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이다. EU는 관세 폭탄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유럽의 불공정 무역을 지적하는 등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상황이다.
특히 EU는 미 유력 정치인의 지역구 특산품을 보복 리스트에 올려놓으며 백악관뿐만 아니라 의회까지 압박하고 있다. 독일 도이체벨레는 “버번위스키가 주로 생산되는 켄터키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할리데이비슨 본사가 위치한 위스콘신은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의 지역구”라며 “리스트 속 일부 품목은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당시에도 논의됐지만 상당수는 최근 미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새로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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