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3월 중 개헌안을 발의하자고 재촉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는 3월 말 시한을 넘기면 개헌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제 유지가 아닌 ‘권력분산’에 무게를 실은 야당은 여권의 주장을 ‘관제개헌 밀어붙이기’로 규정하고 개헌논의 자체를 최대한 늦추고 있다. 22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개헌 투표 시기를 10월로 제시했다. 개헌 투표를 함께 하자는 쪽은 지방선거가 개헌의 골든타임이며 한국당이 당리당략에 빠져 국가 의제를 무산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여권이 자유민주주의 헌정체제를 무너뜨리는 개헌을 강행하고 있으며 동시 투표 추진은 집권세력의 선거용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개헌 문제가 공론화된 지 오래됐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들은 개헌공약을 발표했다. 국회에는 개헌특위가 설치돼 활동해왔고 최근 개헌특위 자문위원의 의견이 나왔다. 이후 개헌안의 범위와 내용, 특히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와 관련해 시민사회와 여야의 공방이 가열되면서 국회의 개헌안 마련이 애로에 봉착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통령 개헌안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헌법 개정 논의가 과연 개헌의 범위와 정당성에 대한 정치적·국민적 합의를 얻고 있는가, 그리고 국회 통과와 국민투표 등 적법한 과정을 거쳐 실효적으로 이뤄질 것인가 하는 데 큰 의문이 제기된다.
개헌의 범위나 정당성과 관련해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개헌논의는 이전 개헌공론의 맥락을 넘어버렸다. 문재인 정권의 개헌 의도는 국회개헌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의 의견에서 표출됐다. 이 의견에는 자유민주주의적 헌법체제 내에서 이를 절차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개헌이 아니라 전문과 기본권 변경을 포함해 대한민국의 정체까지 변경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즉 이 의견에는 우리 헌법의 근본규범인 ‘자유’의 개념을 없애는 조항, 헌법 10조의 ‘국민’ 개념을 북한 헌법 3조에 규정된 ‘사람’으로 대체하자는 의견, ‘사람중심경제’와 노동자 개념을 삽입해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 대한민국을 사실상 연방국가로 만들 수 있는 ‘지방분권’ 조항을 포함했다.
기왕의 개헌공론은 대통령과 국회 등 통치기관에 대한 ‘원포인트 개헌’이었다. 우리 정치권과 국민은 1987년 이후 헌정정치에서 드러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대통령과 국회라는 두 주권적 대표기관의 권한과 임기를 조정하는 개헌에 대해 대체로 합의했다. 기왕의 개헌공론은 제헌헌법 이후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체제를 유지하면서 통치기관에 대한 부분적·절차적 개정을 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이미 확인된 개헌공론의 범위를 넘어 대한민국의 체제를 변경할 수 있는 개헌을 밀고 나갈 경우 이에 대한 정치적·국민적 반대는 예정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아무리 ‘촛불혁명 정부’임을 자임해도 선거라는 헌법적 절차를 거쳐 탄생한 정권인 이상 초헌법적 방식의 개헌을 추진해서도 안 되며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개헌의 정당성에 더해 적법성과 실효성 문제도 크다. 우리 헌법은 국회와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어느 경우든 국회의원 3분의2의 동의를 얻어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개헌안이 확정된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안 발표 때 헌법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평화적 통일’ 조항에서 ‘자유’를 삭제하려다 4시간 만에 철회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자유대한민국의 체제를 바꿀 수 있는 많은 조항이 담겼다. 국회에서의 개헌에 대한 여야 간 합의는 사실상 불가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헌법자문특별위를 구성해 대통령 개헌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개헌안 역시 소위 통치기관에 대한 ‘원포인트’ 개헌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5·18과 촛불혁명의 전문 삽입, 사실상 연방제를 의미하는 지방분권, 대의민주주의를 위축시키는 국민소환제, 자유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 경제 조항을 포함할 것이 확실시된다. 과반의석에 턱없이 모자란 민주당이 국회에서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에 대통령 개헌자문특위는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 방식을 적용할 것을 결정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통령은 사실상 개헌을 위해 소위 ‘여론의 폭정’을 동원할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사실상 우리 헌법이 정한 적법절차에 따른 개헌안 발의와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문 대통령은 왜 특위를 구성해 개헌안을 마련하고 공론화위를 통해 개헌 여론몰이에 열중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현 정권은 개헌도 촛불혁명 방식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여론의 폭정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개헌-반개헌으로 나눌 것인가. 이는 초헌법적 발상이며 숙의(熟議)가 아니라 폭정(暴政)이다. 이럴 경우 문재인 정권의 개헌 추진은 정당성도, 적법성과 실효성도 없을 것이다. 다만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야당을 제압할 집권세력의 선거용 정치공세는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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