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로 들어오며 주먹을 불끈 쥐는 우리 선수들의 세리머니에 함께 뿌듯해했고 불의의 충돌에는 다 같이 탄식을 내뱉었다. 비록 목표로 했던 금메달 수에는 조금 못 미쳤지만 세계 최강 쇼트트랙이 써내려간 13일간의 드라마는 안방올림픽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한국 쇼트트랙이 2018평창동계올림픽 전체 8개 종목에서 금 3, 은 1, 동메달 2개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종합 1위다. 이번 대회 대표팀 목표는 금메달 4~5개. ‘슈퍼 골든데이’로 기대를 모았던 22일 금메달 없이 은 1, 동메달 1개에 그친 게 컸다. 황대헌(19·한국체대 입학 예정)과 임효준(22·한국체대)이 남자 500m에서 값진 은·동메달을 따냈으나 유력한 금메달 종목인 여자 1,000m에서 불운이 따랐고 금메달도 가능해 보였던 남자 5,000m에서 역시 불운을 떨치지 못했다.
22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마지막 날 경기. 여자 1,000m 결선 레이스를 마친 심석희(21·한국체대)는 “마지막 스퍼트 구간이 겹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 여자팀의 투톱인 최민정(20·성남시청)과 심석희는 마지막 코너에서 서로 부딪히고 말았다. 최하위에 있던 최민정이 특유의 아웃코스 추월로 대역전을 노리며 코너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바로 앞의 심석희와 충돌해 둘 다 넘어진 것. 심석희 또한 바깥으로 치고 나가려 했었다. 2명이나 결선에 오른 게 오히려 독이 돼버린 상황. 심석희는 페널티까지 받았다. 네덜란드의 쉬자너 스휠팅, 캐나다의 킴 부탱,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가 1~3위를 차지했다. 최민정은 4위.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에서 처음 열린 여자 1,000m에서 한국·중국이 아닌 나라가 금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한국이 4개, 중국이 2개의 금메달을 가져갔다.
최민정은 기대했던 3관왕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생애 첫 올림픽에서 2관왕(개인 1,500m·계주 3,000m)에 등극, 한층 성숙할 4년 뒤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부쩍 높였다. 1,500m에서 선보인 압도적인 아웃코스 추월은 이번 올림픽의 하이라이트 중 한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올림픽 직전 코치의 폭행 등 힘든 일을 겪은 심석희도 계주 금메달에 힘을 보태며 웃음을 되찾았다. 예선에서 넘어지고도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통과, 금메달까지 내달린 여자 계주는 맏언니 김아랑(23·고양시청)의 ‘미소 리더십’ 등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여자 대표팀이 금메달 2개를 따는 사이 남자 대표팀은 금 1, 은 1,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남자팀은 과거 김기훈-김동성-안현수-이정수의 걸출한 스타 계보를 이어왔지만 지난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계보가 끊겼다.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를 앞세운 러시아와 중국, 캐나다의 득세 속에 노메달 수모를 겪은 것. 그러나 임효준이 1,500m에서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을 캐낸 데 이어 서이라(26·화성시청)가 1,000m 동메달을 따냈다. 이날 벌어진 500m에서는 2명이나 결선에 올라 이 종목 최강자인 우다징(중국)에 이어 2·3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남자 5,000m 계주는 결선에서 20여 바퀴를 남기고 임효준이 넘어졌고 이 때문에 헝가리·중국·캐나다에 이은 4위에 그쳤다. 임효준은 그러나 이번 대회 멀티 메달(금 1, 동메달 1개)을 수확해 남자 쇼트트랙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김선태 쇼트트랙 총감독은 “많은 국민이 응원해주셨는데 (마지막 날) 아쉬운 모습이 많이 나왔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힘든 과정을 이겨낸 선수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우리 선수들은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강릉=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