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상호 의존적 작용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간다. 하지만 현대인의 병리 현상 중 하나인 공동체 의식 약화와 경쟁 지상주의가 ‘분노 조절 장애’를 낳고 사회적 결속력이 깨지면서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이 붕괴함에 따라 느끼게 되는 혼돈과 무규제 상태인 ‘아노미 현상’에 더해 ‘간헐성 폭발 장애’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차별, 무시, 소외감, 상대적 박탈감 등 오랫동안 쌓여온 사회적 불만이 잠재해 있다가 우발적으로 표출되는 ‘방화벽’ 혹은 ‘방화광’이라고 일컫는 ‘병적 방화’가 더해지면서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홧김’에 저지른 ‘욱 방화’로 무고한 인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일어난 서울장여관 방화 사건은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여관을 찾아가 성매매를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홧김에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해 여관 현관 출입구와 복도에 휘발유 9.5ℓ를 뿌리고 불을 질러 무고한 투숙객들이 희생된 참사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의 조속한 쾌유를 바라고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드리는 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생명 경시 풍조는 사회적 불만과 함께 욱 방화로 이어져 대구 지하철 방화(2003년 2월18일)로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다쳤고 인천 인현상가 방화(1999년 10월30일)로 56명이 숨지고 81명이 다쳤으며 올해로 10년이 된 숭례문 방화(2008년 2월10일)로 소중한 문화재(국보 1호)를 잃었다. 이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미국 뉴욕 해피랜드 사교클럽 방화(1990년 3월20일)로 87명이 숨지고 28명이 다쳤다.
소방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한 해도 383건의 방화와 515건의 방화의심 화재가 발생해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소방의 역할은 늘 그렇듯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수나 부주의에 따른 불가피한 화재도 줄여나가야겠지만 최악의 상황, 즉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홧김에 저지른 욱 방화, 특히 휘발유나 시너 등 인화성 물질로 무고한 인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만은 막아야 한다. 방화를 일으키는 개인의 사회적 불만과 분노 조절 장애가 무고한 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만큼 정당성과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경천동지할 경악과 함께 안타까움만 줄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존귀하다. 한 개인의 비뚤어진 우발적 방화와 방학을 맞아 서울 관광을 왔다가 참변을 당한 세 모녀를 비롯한 무고한 여섯 명의 목숨은 아무리 비교해도 어처구니가 없기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더 이상은 무고한 희생이 없도록 성숙한 안전의식과 도덕적 재무장이 필요하며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간헐성 폭발 장애와 ‘외상 후 격분 장애’ 등의 치유를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절실한 참으로 추운 겨울이다. 하루빨리 순간의 감정을 못 참은 욱 방화로부터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사회에서 집단지성의 상호 의존적 결속력을 다지는 따뜻한 봄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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