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시선과 정서의 퀴어 드라마 ‘환절기’가 개봉했다.
외국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떨어져 외동아들과 함께 사는 어머니가 주인공인 ‘환절기’는 이제껏 본 적 없던 특별한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천천히 그들간의 트라이앵글을 만들어가는 이 이야기는 느리고 조심스럽게 관계에 대한 여정을 그려나간다.
지난 22일 개봉한 이동은 감독의 영화 ‘환절기’는 마음의 계절이 바뀌는 순간, 서로의 마음을 두드린 세 사람, 엄마 미경(배종옥), 아들 수현(지윤호)과 아들의 친구 용준(이원근)의 가슴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 이동은, 정이용의 그래픽 노블 ‘환절기’를 원작으로 한다.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의 오영곤 역을 통해 신스틸러로 관객들의 뇌리에 짜릿한 인상을 남긴 배우 지윤호. ‘우리 집에 사는 남자’ ‘아르곤 ’등 다수의 드라마를 통해 캐릭터의 착장을 맞춤옷처럼 입었던 배우 지윤호가 ‘환절기’의 수현 역할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치인트’는 절벽 끝에 선 저를 구해준 드라마고 ‘환절기’는 처음이 많았던 영화이다”고 말하는 배우 지윤호.
그는 “연기를 하면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인간 윤병호(본명)로 자리매김하고, 완성이 아닌 완성체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고 전했다.
Q. 이동은 감독이 ‘치인트’를 보고 콜을 보냈다고 했다. 러브콜도 기분 좋았겠지만 시나리오를 보고 끌렸던 점은?
A.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 이 영화 정말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 결정적인 대사가 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버스 정거장 세 정거장 밖에 안 지난 거 같은데 벌써 인생이 끝나 있네. 왜 이리 아등바등 살았을까” 장면이다. 그 대사에 꽂혔다. 백 프로 이해는 못하지만,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어요.
사람 사이의 감정, 당연하게 내 곁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부모 친구들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이를 관객에게 전달 할 수 있었음 했다.
Q. 어린 아이처럼 해맑고 다정한 아들인 동시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 청년의 얼굴을 지닌 ‘수현’ 역을 맡았다. 어떤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나?
A. 수현을 준비하면서 캐릭터의 성격 중 제 성격이랑 같은 걸 찾는 데 주력했다. 또한 인물의 상황에 주력했다. 수현이란 인물이 개성이나 성격을 드러내는 것보다 평범한 가정에서 물 흘러가듯이 흘러가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고 3 그 시기는 굉장히 예민하지 않나. 자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시기라는 점도 고려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짧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엄친아’ 같은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다.
Q. 영화 속에서 식물인간인 채로 누워있는 장면이 많아 힘들었겠다.
A. 누워있는 건 안 힘들었다. 그건 힘들다고 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워서 있어도 연기를 하는 배우 입장이라, 식물인간이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례를 공부했다. 예를 들어 악몽을 꾸거나 밖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지만 반응을 못하는 사례를 공부했다. 내 움직임이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그런 마음가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환절기’란 작품을 지윤호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A. 온도차가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같은 계절을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남녀간 관계든, 동성의 친구 관계든 이해와 양보는 필수이다. 서로가 원하는 계절이 달라지면 헤어질 테고..가치관이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 영화이자,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다.
Q. 수현의 계절은 사고 이후 어른의 계절로 가는 것 같다.
A. 수현은 식물인간일 때 엄청난 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런데 사고 당시 감정으로 깨어나 그 계절에 머물러 있다. 엄마와 친구 용준은 다른 계절에 있는거다. 내가 깨어났을 때 사람끼리 온도차이가 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열린 결말로 내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각각 인물들의 온도차가 다르지만 상대방의 온도가 어디쯤인지는 알지 않았을까.
Q. 퀴어 작품은 처음이다. 수현이 용준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A. 이동은 감독님이 ‘환절기’가 퀴어 영화에만 한정하는 게 아닌 가족 영화라고 하셨다. 이게 ‘동성애’로만 볼 수 없다. 이 친구에 대한 존경심과 우정도 있다. 이 시기에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뭔가 엄청난 감정이 일어나는 시기라고 봤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걸 용준이 가지고 있고, 용준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수현이 가지고 있다.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다고 해석했다.
Q. 낯을 가리는 조용 조용한 성격 같다. 실제론 어떤가?
A. 매순간 변화는 것 같아요. 저도 제 성격을 단정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부산 사람이라 표현에 서툰 편이다. ‘치인트’ 땐 발랄했다면, ‘환절기’땐 또 딥한 성격이 된 것 같아. ‘환절기’를 하면서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사나 등 정말 철학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면서 성장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왔을 때 거부하기 보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내 걸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가는 거 같다.
Q. 2012년 드라마 ‘신의’로 데뷔한 7년차 배우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A. 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많이 끄집어 내려고 해요. 대학생 때부터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인터뷰하다가 제가 느낀 기자 이미지를 남겨놓으면, 혹시나 ‘아르곤’ 같은 작품을 찍게 됐을 때, 기자의 특징을 쓸지 모르겠다. 가슴 속에 담아놓으면 한 번에 찾을 수 있다. 한번 더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스타일이랄까.
Q. 관찰 노트도 따로 만들었나?
A. 공부하면서 연기를 알아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약간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1더하기 1이 꼭 2로만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앉아서 공부하거나 분석하기보단, 나한테 맞는 방법을 찾고 싶어한다. 열어놓고 창작을 해야 상대방이 대사를 쳤을 때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받아진다. 20프로를 비우고 촬영장에 가는 게 나만의 방식인 것 같다.
Q. 연기 외에 제일 좋아하는 게 있다면?
A.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 선수 꿈도 꿨는데 결국 선수는 하지 못했다. 그것 외엔 그냥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나가서 사람을 만나서 내 꿈을 키우고 싶은 마음 한 켠엔 혼자 집에서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부딪친다. 시끄러운 걸 안 좋아하는 편이라 집에 혼자 앉아 흐르는 정적을 즐기는 게 쉬는 것이다. 누군가는 술 마시면서 놀아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데, 전 가만히 집에 있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Q. 다음엔 어떤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나?
A. 확실한 색깔이 있는 강렬한 작품에 끌려요. 다양한 걸 잘 해도 좋지만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컬러가 있는 배우도 나쁘지 않다. 끝판왕인 누아르 장르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제 안에 남성성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영화 ‘26년’에서 진구 선배님이 하셨던 역할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
Q. ‘환절기’를 통해 처음으로 오디션이 아닌 직접 출연을 제안 받았다. 또 주인공으로 작품을 함께 하게 됐다.
A. ‘환절기’는 저에게 ‘처음’을 많이 경험하게 해준 영화이다. 이동은 감독님에게 너무 감사하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게 건방질 수 있지만, 혹시나 제가 감독님이 필요한 위치까지 가 있을 때 은혜를 갚고 싶다. 연기 내공이 좀 더 쌓였을 때 감독님이랑 다시 한번 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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