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6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을 둘러싸고 정면 충돌했다. 여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산적한 법안처리를 위한 야당의 협조를 구했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정부 여당을 향해 체제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여야의 대치국면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당분간 각종 민생·개혁법안 처리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2월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 사안인 근로시간 단축법안은 27일 새벽 환경노동위원회를 전격 통과하면서 28일 본회의 처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영철 방남 둘러싸고 정면 충돌한 여야=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정세균 의장 주재로 열린 정례회동에서 국회 운영방안을 논의했다. 정 의장은 “2월 임시국회가 28일로 끝나는데 아직 손에 쥐는 것이 없어서 참 걱정”이라며 “일용할 양식을 마련할 수 있도록 여야 원내대표가 특별히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2월 국회에서는 공직선거법을 꼭 통과시켜야 하고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민생법안도 산적해 있다. 민생국회로 마무리할 것을 간곡히 제안한다”며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하지만 한국당이 여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을 문제 삼으면서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서는 효율적인 여야 관계가 이뤄져야 하는데도 대통령은 야당을 탄압하고 여당은 야당을 무시하고 있다”며 “정말 할복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성토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국회가 무력화되는 단초를 정부 여당이 제공했다”며 지원사격했다. 결국 이날 회동은 여야의 날 선 신경전 끝에 아무런 합의도 이뤄내지 못한 채 종료됐다.
한국당은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계기로 강력한 대여투쟁을 예고하면서 여야의 대치국면도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문재인 정권이 끝내 천안함 46용사의 죽음을 외면한 채 살인 전범 김영철을 비호하려 든다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체제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국당은 이날 서울 청계광장에서 김영철 방남 규탄 집회를 열고 장외투쟁을 이어갔다. 이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평창올림픽의 오점이 있다면 실패의 저주를 일삼은 한국당의 행태”라며 ‘안보장사’를 그만두고 정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상임위 줄줄이 취소에 법안 처리도 빨간불=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둘러싸고 여야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상임위원회의 법안 처리도 사실상 올스톱됐다. 한국당은 장외투쟁과 별도로 상임위 활동은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빈손 국회’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운영위는 지난 23일 김성태 위원장이 김 부위원장의 방남 배경을 듣기 위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출석을 요구한 후 이날까지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운영위에서 통과시켜야 하는 16건의 법안 처리도 함께 미뤄졌다. 이 밖에 이날 법안심사가 예정돼 있던 다른 상임위의 일정도 잇달아 취소됐다.
다만 2월 국회의 핵심 쟁점인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27일 새벽 환노위를 전격 통과했다. 환노위는 전날인 26일부터 이날 새벽까지 고용노동소위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한 뒤 곧바로 전체회의까지 열어 토·일요일을 포함한 주 7일을 근로일로 정의함으로써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한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다만 산업계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 규모별로 시행 시기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특히 30인 미만의 사업장에 대해선 2022년 12월 31일까지 노사간 합의에 따라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추가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휴일근무수당 지급과 관련해선 현행의 기준을 유지키로 했다. 이에 따라 8시간 이내의 휴일근무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50%를, 8시간을 넘는 휴일근무에 대해선 200%의 수당을 지급받게 된다. 또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전면 도입해 공무원·공공기관 직원들에게만 적용되던 법정 공휴일 유급휴무 제도가 민간까지 확대된다. 환노위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의결을 시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내세우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유통산업발전법 등 최저임금 인상 후속대책 법안과 한국당이 추진하는 규제프리존특별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은 2월 국회 동안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김현상·권경원기자 kim0123@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